美 25개 파산기업 경영진 208명 3년간 4조원 챙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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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파산한 미국 기업들의 경영진과 이사진이 회사가 파산하기 전 주식을 대거 팔아치워 막대한 수입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또 회사의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도 급여와 보너스·스톡옵션을 통해 거액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31일 미국 25개 파산기업의 경영진들이 지난 3년간 벌어들인 돈이 33억 달러(약 4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는 FT가 지난 18개월 동안 문을 닫은 25개 대기업의 경영진과 이사들 2백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드러난 인물은 광케이블 회사인 글로벌 크로싱의 게리 위닉 회장. 그는 1999년부터 회사가 망하기 직전까지 모두 5억1천2백만 달러(6천1백50억원)를 손에 쥐었다.

엔론 스캔들의 주역으로 알려진 케네스 레이는 2억4천7백만달러를 챙겨 3위에 올랐다.

조사 결과 상위에 랭크된 25명 중 엔론 출신이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글로벌 크로싱(4명)과 월드컴(2명) 출신도 다수 포함됐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중 '엑소더스 커뮤니케이션스'의 K.B.찬드라제커는 회사가 거덜나기 직전 1억3천1백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팔아치워 '영광스런 탈출'에 성공했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2주 전 의회 증언에서 "90년대 말 호황기에 경영진들이 제몫 챙기기에 급급, 미 자본주의가 왜곡됐다"며 이들의 '전염된 탐욕'을 비난한 바 있다.

FT는 이들 경영진이 이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는지는 명확지 않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회사가 파산하기 직전 단기간에 거액이 빠져나갔다는 것만으로도 이들 파산기업의 경영진에 대해 회사와 관련된 수입액을 환수조치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번 조사 대상자 2백8명 가운데 52명은 1천만 달러(약1백20억원)이상을 챙겼고, 31명은 2천5백만 달러 이상, 16명은 5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1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파산기업 임원도 9명이나 됐다.

이들이 불과 3년 만에 33억 달러를 챙기는 동안 해당기업의 주주들은 2천1백억달러(약2백52조원)이상의 손해를 봤고 종업원 10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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