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러리 서기도 지쳤나 무역위·공자위등 정부 산하위원회 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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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 부처의 산하 위원회 조직이 표류하고 있다. 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하면서 제 목소리를 못내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갈등이 커지고 있고, 민간위원들의 자격과 전문성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무역위원회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도마 위에 올랐고 지난해 말에는 농림부 자문기구인 양곡유통위원회가 추곡수매가를 4~5% 내리자고 건의했다가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동결하자 민간위원들이 줄줄이 사퇴하기도 했다.

◇독립성 못지킨 무역위=수입품이 국내 산업에 미치는 피해를 조사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1998년 발족했다. 산업자원부 산하지만 업무 영역은 독립된 준사법적 기구다. 위원장을 포함해 6명의 민간위원과 2명의 정부위원 등 총 8명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번 중국산 마늘 사태에서 무역위는 독립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5개 경제부처 장관들이 무역위의 결정에 앞서 지난 24일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론을 낸 것. 이에 따라 29일 무역위는 정부안에 손을 들어주는 요식 절차가 됐다는 지적이다. 전성철 위원장은 30일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기에 한계를 느꼈다"며 사표를 냈다.

전 위원장은 지난 16대 총선 때 서울 강남갑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가 낙선한 후 지난해 위원장을 맡았다. 산자부 관계자는 "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정치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파행 치닫는 공자위=지난해 2월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진 재경부 산하 심의·조정기구다. 권한과 책임이 모호해 태생적으로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정부위원 3명과 민간위원 5명 등 8명으로 구성하며 경제부총리와 민간위원이 공동 위원장을 맡는다.

정부와 민간위원간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올 초 대한생명 매각 건이다. 정부는 대한생명을 한화그룹에 하루 속히 넘기자는 생각이었지만, 민간위원들은 가격은 물론 인수 자격까지 시간을 갖고 충분히 따져보자는 입장이었다.

이 과정에서 박승 위원장이 한국은행 총재로 옮기면서 공석이 된 민간위원장에 정부가 이진설 서울산업대 총장을 앉히려하자 민간위원들이 반발, 지난 5월 초 전격적으로 강금식 성균관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뽑았다. 이진설 총장은 즉각 위원직을 그만뒀고, 민간위원들이 뽑은 강금식 위원장도 '8·8 재·보선'출마를 위해 사퇴의사를 밝혔다.

재경부 관계자는 "곧 출마할 사람이 위원장직을 수락한 것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며 "공자위는 여당과 야당이 적당히 절충해 만든 바람에 누가 맡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승진 변호사까지 사표를 내면서 민간위원 5명 중엔 어윤대 고려대 교수와 유재훈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 등 2명만 남아 있어 파행 운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고현곤·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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