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아부용 역사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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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YS정부는 '비리정권', DJ정부는 '개혁정권'이라는 대조적 평가를 내린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정 심의를 통과한 뒤 논란이 일자 교육인적자원부가 서둘러 직권 수정을 지시하겠다고 나섰다. 현 정권하에서 만들어지는 교과서에서 현 정권을 평가한다는 자체가 역사서술의 상식을 벗어난 일인 데다 교육부가 뒤늦게 알고 이를 수정하겠다는 자체가 난센스로 보인다.

검정을 통과한 문제의 근·현대사 교과서 4종은 7차 교육과정에 의해 내년에 처음 도입되는 고교 심화선택과목이다. 현행 국정 국사교과서가 전·현 정권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만 짧게 기술한 반면 이번 교과서들은 나름대로 정권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를 시도한 것이 특징이다. 즉, 김영삼 정부는 '일부 측근의 막강한 권력 행사와 부정비리''대형 사고가 자주 일어나 사회 불안' 등으로 '비리정권'이란 인상이 짙게 기술한 반면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국제통화기금(IMF)관리 체제 졸업, 민주적 개혁조치, 남북 정상회담, 노벨평화상 수상 등 '개혁정권'으로서의 치적을 부각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 국민 공통적 교육목표와 가치중립적 평가잣대가 돼야 할 역사교과서가 이같이 편향되면 자라는 청소년들의 역사관에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어떤 사안이 역사적 기술 대상이 되려면 일정한 검증기간을 거쳐야 하는데도 현 정권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한 것은 너무 성급하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다. 김대중 정부가 벌인 개혁조치는 각종 게이트와 측근의 비리로 빛을 잃어가고 있고, 대북정책도 여러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검증과 평가를 하기엔 아직 이르다.

현 정권에 대한 평가를 역사교과서의 기술 대상으로 삼는 한 같은 오류는 되풀이될 것이다. 교육부가 현 정권에 대한 평가와 역사기술 자체를 제외하는 검정 지침을 확실히 내려야 할 것이다. 역사교과서가 정권의 아부용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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