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연체 대신 갚아주겠다" 유혹 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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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회사원 申모(34)씨는 올해 초 인터넷에서 '신용카드 연체대금을 대신 결제해준다'는 광고문구가 적힌 사채업자의 홈페이지를 발견하고선 꿈에 부풀었다.

카드 연체대금 1천2백여만원을 막기 위해 카드 8개를 통해 현금서비스를 받아왔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던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곧바로 자신의 카드와 주민등록번호 등을 사이트 운영자에게 알려줬다.

이 업자는 신용카드 8개의 비밀번호를 담보로 이틀 만에 申씨의 연체대금을 해결해줬다.

1주일 후 이 업자는 申씨에게 84만원의 이자를 요구했다. 申씨가 이자를 갚지 못하자 업자는 담보로 맡긴 신용카드를 통해 1천5백만원의 현금서비스를 받은 뒤 연락을 끊어버렸다.

申씨는 1주일 만에 연체액이 3백만원이나 더 불어났고, 결국 신용불량자로 분류돼 모든 카드 사용이 정지돼 버렸다.

대학생 金모(22)씨도 카드 연체대금 2백만원을 갚기 위해 인터넷의 사채업자를 찾았다가 1백만원 이상의 손해를 봤다.

'카드를 담보로 맡기면 한달에 10%의 이자만 받고 즉시 연체대금을 대납해준다'는 광고에 속은 것이다.

연체대금을 대신 갚아준 사채업자가 자신의 카드 두장으로 1백만원의 현금서비스를 받고,2백만원의 물품을 구입한 사실을 한달 뒤 카드명세서를 보고서야 알게 됐다. 金씨는 다시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운영자인 사채업자들을 수소문했지만 모두 연락처를 바꿔버렸다.

인터넷을 통해 신용카드 대금 연체자들을 끌어들여 연체금을 대신 갚아준 뒤 고액의 이자를 뜯어내는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검찰이 파악한 신용카드 연체금 대납 전문 사이트만 1천여개에 이르며, 이를 활용하는 사채업자도 34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연체대금을 갚아주고선 1주일 만에 수수료 등의 명목으로 대납액의 5~10%를 요구하고 있어 연단위로 환산하면 2백40~4백80%의 이자를 챙기고 있는 셈이다.

또 일부 인터넷 사채업자들은 연체금을 해결해준 뒤 물품구입 한도까지 상품권 등을 구입해 도매업자에게 7~8% 할인해 되팔거나 이른바 카드깡을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부장검사 韓鳳祚)는 28일 인터넷 사채업자들에 대한 일제 단속을 벌여 14곳을 적발했으며 李모(31)씨 등 9명을 여신금융전문업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나머지 8명에 대해서는 벌금 3백만~1천만원에 약식기소했다.

李씨 등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연체자들을 모집한 뒤 지난 3~4개월 동안 대납해준 연체금은 1백14억여원이었으며, 이를 대가로 챙긴 이자는 95억여원에 달했다.

검찰 관계자는 "광고비 등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사채업자들이 통신판매업 등을 위장해 인터넷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말 기준 개인 신용불량자가 전년도에 비해 17.6% 늘어난 2백45만명에 육박해 피해자들은 수천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정훈·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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