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스탠더드로가자<1>:정치자금 入·出金 공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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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성공적인 월드컵 행사를 통해 우리 국민은 우리가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했습니다. 그 열기를 국가발전의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게 사회적 공감대입니다. 바로 중앙일보가 연초에 연재했던 '업그레이드 코리아-10대 국가과제'시리즈의 정신과 통합니다. 연재 당시의 사회적 반향에 힘입어 후속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2부의 주제는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자'로 정했습니다.

편집자

월드컵이 끝난 후 가장 눈총을 받고 있는 분야가 정치다. 각종 여론조사마다 "선진국 도약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치"로 꼽힌다. 정치인 스스로도 한결같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야 흑백대결로만 치닫는 사생결단식 정치문화에서부터 정치인들의 저질행태에 이르기까지 고쳐야 할 대상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정치 부패구조 청산을 최우선 개혁과제로 꼽는다.

전직 대통령들의 수천억원대 비자금에서부터 최근의 대통령 아들들 비리, 각종 게이트마다 등장하는 정치인 명단과 같은 현상이 계속되는 한 정치발전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학자들은 "한국의 정치자금 투명성이 구멍가게 수준에도 못미친다"며 "정치 부패 청산을 위해서는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추방하는 '정치자금의 투명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고 있다. 전경련은 올해 2월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이회창(會昌)한나라당 대통령후보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후 정치권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정치개혁의 핵심 의제로 가다듬고 있다. 경제계와 정치권이 모처럼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양상이다. 문제는 정치자금 투명화를 가능케 하는 실행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느냐 하는 것이다.

숭실대 강원택(康元澤·정치학)교수는 "수입과 지출의 완전 공개가 투명화의 선결조건으로 선진 각국의 흐름에도 맞다"며 "야당에 불리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미뤄져 왔지만 정권교체도 경험했고 기업회계도 투명해진 만큼 지금이 입법화의 가장 적기(適期)"라고 주장했다.

김박태식(金朴泰植)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한발 더 나아가 "투명화를 전제로 정치자금 상한선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지키지도 못할 상한선을 그대로 둘 경우 '이중장부'의 등장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대신 그는 "정당이나 선거 후보자의 지출 보고서를 정밀하게 심사해 허위신고가 드러날 경우 엄중하게 처벌하는 조치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진국들은 이미 정치자금 입·출금의 투명화에 정치발전의 사활을 걸고 갖가지 묘안을 강구하고 있다. 미국은 1백달러 이상은 반드시 수표로 내도록 하고, 50달러 이상 기부시 신원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독일·일본·프랑스 등은 정당 회계보고서 제출에 앞서 공인회계사의 사전감사가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

중앙선관위도 28일 정치자금 모금내역과 1백만원 이상 정치자금 기부자 인적사항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내용을 포함한 정치자금 투명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대선 입후보예정자는 선거일 1년 전부터 정치자금 관리인을 두어 모든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한 단일계좌를 통해 관리하도록 하고 선거가 끝난 뒤 선관위에 보고토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선관위가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경희대 김민전(金玟甸)교수는 "이번 기회에 정당이 소액다수 후원금 모금 등을 통해 자생력을 키우면 특정 집단보다는 다수의 국민을 염두에 둔 민의중시의 정치가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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