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버핏에게 한 수 배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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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사진)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을 백악관에서 만나 경제를 살리기 위한 비법을 경청했다. 해소될 기미 없는 미국의 높은 실업률로 오바마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오는 와중에서다. 버핏은 대선 때 오바마의 자문역을 맡았다.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14일(현지시간) “버핏 회장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다”며 “상당히 오랜 시간 경제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그의 경제 훈수 내용에 미국민의 눈과 귀가 쏠렸지만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CNBC 등 미국 언론은 “버핏이 지속적인 정부 부양책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버핏은 그동안 “경제가 붕괴되는 것을 막으려면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개인 재산 580억 달러(약 70조원)로 2008년 세계 최고 부자였고 올해는 세계 3위 부자로 기록된 버핏은 이날 낡은 크라바트(넥타이처럼 매는 남성용 스카프)를 매고 나타났다. 오바마는 그에게 회색 물방울 무늬가 들어간 자신의 붉은색 넥타이를 장롱에서 꺼내 선물했다. 버핏은 즉석에서 오바마의 넥타이를 맸다.

오바마는 버핏과 만난 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브라이언 모이니핸 최고경영자와 허니웰인터내셔널의 데이비드 코트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재계 인사들과도 만났다. 이들과의 면담엔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동석했다고 기브스 대변인은 말했다.

◆규제와 증세에 재계는 불만=한편 재계를 대표하는 미국 상공회의소는 이날 일자리 창출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에서 오바마의 경제정책을 맹공했다. 토머스 도너휴 미 상의 회장은 대통령과 의회에 보낸 공개 서한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정책엔 기업을 위한 게 없고 각종 규제로 일자리 창출을 막고 있다. 고용창출의 숨통을 조이는 규제를 즉각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전임 조지 W 부시 정부 때의 감세 기조를 유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백악관은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과 밸러리 재럿 선임보좌관 명의로 상의에 서한을 보내 불만을 털어놨다. 백악관은 서한에서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18개월 전과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그럼에도 재계가 불만을 보이는 데 놀라고 실망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오바마 정부가 연일 쏟아내고 있는 중요한 조치들을 재계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정 다툼도 있었다. 재럿 보좌관은 “이번 콘퍼런스에 연설 기회를 요청했지만 초청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상의 측은 “백악관이 행사 개최 하루 전에 연락해 와 거절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상의는 그동안 백악관이 추진하는 건강보험 개혁과 금융규제 개혁법안, 온실가스 대책 마련 등의 과정에서 사사건건 반대했다. 특히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재계가 야당인 공화당에 선거운동 자금을 몰아주고 있어 백악관과 상의 간 대립은 깊어 가는 양상이다.

워싱턴=최상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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