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진보단체·전교조, 교육감 흔들기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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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진보 교육감 등장으로 학교 현장과 교육정책이 진보단체와 전교조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평등교육 실현을 위한 전국학부모회와 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들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실시 나흘 전인 9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게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명확히 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전교조 서울지부도 같은 날 시험 응시 선택권 보장 약속을 지키라며 곽 교육감을 압박했다. 곽 교육감이 시험 전날 ‘시험을 안 봐도 무단 결석은 아니다’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보냈다가 번복해 영등포고의 단체 시험 거부 소동 같은 혼란이 발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진보 교육감들이 진보단체와 전교조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진보단체나 전교조가 진보 교육감의 주인이나 감독자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는 건 가당찮다. 교육감을 뽑은 건 국민이지 진보단체나 전교조가 아니다. 자기들이 당선시켰으니 지분(持分)이 있다는 듯이 교육감을 뜻대로 움직이려는 작태(作態)는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傲慢)일 뿐이다.

진보 교육감들이 중심을 잡고 진보단체·전교조에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선거 때 도움을 받았다는 이유로 끌려 다니며 교육의 정도(正道)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취임준비위원회나 인수위원회를 진보단체·전교조 인사 일색으로 꾸렸던 건 이미 지난 일이다. 취임 이후까지 교육청 산하 위원회나 자문기구를 이들에게 내줘선 곤란하다. 진보단체나 전교조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일이다. 외부 압력도 만만찮을 것이다. 엊그제 전북에선 전북교육연대 등 37개 시민사회단체가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를 구성했다. 건강한 감시와 제안을 내세우고 있지만 교육감의 교육정책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공산이 크다. 이들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전체 교육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교육 정책 방향을 세운다는 자세로 대응해야 한다.

진보 교육감의 등장은 한국 교육이 그간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건 진보단체·전교조가 교육감 흔들기로 교육 현장을 송두리째 뒤엎을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릴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