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생활과 동떨어진 교과서: 용어 외우고 경제공부 끝 일상생활선 무용지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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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시험요 ? 경제 용어만 잘 외우면 돼요."

경기도 분당에 사는 중학교 3학년 차모(14)군은 시험철이면 경제 공부도 여느 과목과 마찬가지로 교과서에 밑줄을 그으며 달달 외운다. 車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실과 시간에 용돈 기입장 쓰는 방법을 간단히 배우긴 했지만 한두번 해보고 말았다.

학교 경제 교육은 이같이 실제 생활과 거리가 먼 이론 중심의 외우기에 치우쳐 있다.

"생활과 밀접한 용돈 관리나 소비 교육은 실천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중학 과정을 미리 배우는 과외에 골몰한다. 입시가 최우선인 분위기에서 생활 체험 교육을 할 여유가 없다. 섣불리 나섰다가 학부모에게서 '쓸데 없는 짓 한다'며 항의를 받기 십상이다."(서울 D여고 경제 담당 교사)

"폐품 수집은 근검절약을 가르치는 좋은 실천교육인데도 시대에 뒤졌다는 인식 때문에 많은 학교에서 자취를 감췄다. 알뜰 바자도 줄어들었다. 바자가 열려도 아이들 대신 어머니들이 나와 물건을 팔고 산다. 아이들은 구경꾼일 따름이다."(서울시교육청 장학관)

중앙일보 경제연구소가 서울 시내 초·중·고교생 5백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합리적인 소비와 절제하는 생활에 대한 가르침은 그나마 가정(30.6%)에서 이뤄지지, 학교 교육(9.4%)은 형식에 그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경제는 학생들이 재미없고 골치 아픈 과목으로 여겨 찬밥 신세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경제가 사회·가정 과목에서 별도 교과목으로 독립하지만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이라서 외면당한다. 대입 수능시험에서도 학생들은 경제보다 점수를 따기 쉽다고 생각하는 정치와 사회문화를 선호한다.

"경제가 중요하니까 많이 배울 것 같지만 실상은 딴판이다. 경제를 선택 과목으로 해서 되겠는가. 그러니 고등학교를 나와도 세금과 부동산 등 기본적인 생활경제 상식도 모른다."(김재원 한국경제교육학회장·한양대 교수)

학교 교육의 기초 자료인 교과서부터 문제다.

"중학교 1학년 때 배우는 교과서가 어려운 경제논리와 용어를 나열하는 식으로 경제학원론의 축소판이라서 학생들이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경제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생활주변 사례를 들어 설명한 게 너무 적다."(김상규 대구교육대학 교수)

예컨대 중학교 3학년용 사회 교과서는 수요와 공급 원리에 대해 '균형가격은 수요량과 공급량이 균형을 이루는 선에서 결정된다'고 적고 있다. 김상규 교수는 "같은 기차표나 예식장 비용이 평일에는 싸고 주말에 비싸다는 예만 들어도 수요·공급의 원리가 가슴에 와닿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과서 쪽수도 비교가 안된다. 미국 교과서가 구체적 사례와 자세한 설명을 하느라 6백여쪽에 이르는 데 비해 우리 교과서는 이론 중심으로 언급하고 넘어가다 보니 2백쪽을 조금 웃돌 정도다.

교과서 내용도 시대 변화에 뒤처져 있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는 지난해 말 자아비판을 했다. 지금까지 깨끗한 부(淸富)에 대한 존경심, 경쟁과 선택의 중요성, 노동운동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시장 기능의 효율성 등을 소홀히 다뤘다고 지적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극소수지만 체험 교육을 하는 학교도 있다.

"경제·소비 교육은 반드시 교과목에 그 내용이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교장이 의지만 있다면 자체적인 프로그램으로 재량껏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우리 반에선 용돈 기입장을 꼭 쓰도록 한다."(서울 독산동 K초등학교 교사)

선진국은 학교에서 체험 교육이 기본이다.

박명희 동국대 교수는 "미국 학교의 경제 교육은 평생 가계 재무교육이다. 중·고교에서 배우는 소비자학은 선택할 직업이 무엇이며 몇살 때까지 얼마를 벌 수 있는지 등 평생 계획을 세우도록 가르친다. 우리 학교 교육도 이런 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양재찬 전문기자, 이재광·신예리·김동호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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