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얼굴 활짝 펴게 불황 터널 벗어 났으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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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주방용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김종민(40)씨가 어머니와 함께 그릇을 정리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오종택 기자

"닭의 해를 맞아 장닭처럼 크게 한번 홰를 쳐 보겠습니다."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10평짜리 식당용 그릇 판매점인 '창덕주방'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민(40)씨. 지난해 12월 31일 가게에서 만난 김씨는 "올 한해 어땠느냐"는 질문에 "매출이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새해에는 좀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듯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며 재고 상품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경기가 나빠진 탓인지, 발디딜 틈 없던 손님들은 하루 20~30명 선으로 줄어 한산하기만 했다. 오전 5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일 17시간씩 열던 가게를 이제는 오전 8시부터 12시간 정도만 열어놓는다. 오전 5시에도 찾아오던 손님들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어 14년째 가게를 꾸려왔지만 2004년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도 이 같은 불경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생활비를 거의 집으로 가져가지 못해 하나뿐인 딸 보영이(8)도 피아노 학원을 끊어야 했다. 한달이면 서너차례 가던 외식은 이제 옛날 얘기가 됐다.

"물건을 팔아도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장사에 나선 후 처음으로 급전을 구했다"는 김씨는 "중앙시장에 있는 1000여 상점들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건값을 받으러 찾아간 식당이 불과 몇달 만에 문을 닫고 사라진 경우도 있었다. 가게 한 곳이 생길 때마다 다른 한 곳은 망한다는 얘기까지 시장에서는 돌아다녔다.

김씨와 함께 그릇을 정리하던 어머니 백남순(67)씨도 "올해는 유난히 아들의 어깨가 처져보여 마음이 아팠다"고 거들었다. 중소기업 회사원으로 있던 아들에게 가게를 맡긴 것을 이처럼 후회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새해에도 경기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경제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을 때 가장 속상하다고도 했다. 김씨는 "아무리 어렵다고 웅크릴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며 어머니 백씨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러고는 "장사는 더 힘들어졌지만, 이대로 있을 순 없다"며 "서민들의 얼굴이 활짝 펴게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새해의 포부를 조심스럽게 말했다. 평소보다 활발히 움직이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더 친절하고 성실히 대하겠다는 소박한 각오를 다졌다. "시장 상인도 그냥 앉아서 장사하던 시대는 끝난 것 같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대형 프랜차이즈 음식점도 주요 고객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체계적인 재고관리를 위해 컴퓨터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다"는 김씨는 우선 엑셀 등 사무용 프로그램으로 완벽하게 재고관리를 할 수 있을 때쯤엔 인터넷 홈페이지도 만들 생각이다.

김씨는 "모든 사람이 모이를 쪼는 닭처럼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국가 경제가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며 "'희망의 그릇'을 파는 가게로 소문이 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새벽의 닭울음처럼 새해는 불황의 그늘이 깨지기를 서민들은 바라고 있었다.

이수기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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