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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석고대죄해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와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국회 본회의 대표연설은 하나같이 기대에 전혀 못미친다. 50여일간의 식물국회를 사죄하는 의미에서라도 뭔가 희망차고 신명나는 대목을 담아야 했지만 그저 8·8 재·보선을 의식, 신물나는 정치적 수사(修辭)로 일관했다. 지금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문제는 수사를 제대로 해야 할 검찰의 몫이지 책임전가에 바쁜 정치인의 몫은 아닐 것이다.

徐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이 특검조사를 받아야 한다며 거부 땐 중대결심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온 국민을 경악과 실의에 빠뜨린 사태의 심각성과, 金대통령의 책임이 큰 것은 분명하지만 연설 전체를 정치공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유감이다. 다수당 대표답게 국정을 선도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노력이 미흡했다.

민주당 韓대표 연설은 한심하다 못해 애처로움마저 느껴진다.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와 관련, 이를 막지 못한 대통령 보좌진과 사정기관 책임자들이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했는데 비난 화살을 청와대·정부에 돌리고 대통령과 더불어 민주당은 슬그머니 빠져 보려는 잔수가 역력하다.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가 한창일 때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두 사람이 민주당 대표를 역임했고 한나라당이 '3홍 비리'를 거론할 때 펄펄 뛰며 그런 일 없다고 한 게 민주당이었다. 또 동교동 비서 출신인 韓대표는 개인적으로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입이 열개 있어도 할 말이 없다"는 말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정리 때문에 대통령을 차마 걸고 들어가지 못하겠다면 민주당이 함께 석고대죄(席藁待罪)하겠다고 나서는 게 마땅하다. 게다가 역공을 취한다고 케케묵은 5대 의혹을 꺼내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를 겨냥한 점은 정쟁에나 집착한다는 방증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대표연설마저 네거티브 정치공세로 치달으니 앞으로의 국회운영, 정국은 뻔하다. 이전투구(田鬪狗)의 늪을 못벗어난 채 국민을 불안케 하고 짐만 될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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