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 自淨 선언 준비… 방송가는 살얼음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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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가수들이 자정(自淨)을 다짐하고 방송계와 음반업계 전반의 개혁을 촉구하며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연예인과 매니저, 방송 PD간의 음성적인 거래 관행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고질적 관행의 뿌리를 들어내는 계기로 삼기 위한 것이다. 한 관계자는 "최근 가요계는 음반 출시를 연기하고 TV 출연 자체를 꺼릴 정도로 움츠러들었다"면서 "이같은 고통을 의미있는 변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들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발성 '생색내기 수사' 아니다=이번 수사는 과거 몇몇 담당 PD들을 구속하는 선을 뛰어넘을 것이란 게 여의도 방송가의 관측이다. 이는 수사의 화살이 부장·국장급을 향하고 있는 데다 실제로 구속되거나 소환 명단에 오르내리는 당사자의 면모가 당초 예상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구속된 m.net의 김종진 제작본부장은 뮤직 비디오계의 수준을 한단계 높인 주인공으로 각광을 받았다. 특히 각종 콘서트에서도 뛰어난 기획력을 보여줬던 실력자다. 또 검찰이 혐의를 포착한 MBC의 은경표 책임 PD와 타 방송사의 국장급 인물도 쇼·오락 프로그램 제작에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던 사람들이다.

방송국 내부에선 조사 대상자 리스트가 이미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다. 휴가를 가는 PD들에게 "잠적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도 오가고 있다. 이에 대해 방송사 관계자는 "일부 방송사만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것은 심히 의도가 보이는 행위다. 국면 전환용 '마녀 사냥'이다"라고 항변했다.

◇자정 선언에 1백명 이상 서명 가능할 듯=윤도현밴드·이은미·강산에·전인권·크라잉너트 등은 다음 주 중으로 다른 가수들의 서명을 받아 선언문을 발표할 계획이다. 선언문에는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진 기획사와 방송사간 유착 등의 문제는 가요계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로 제작자와 PD뿐 아니라 가수들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음을 반성한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방송이 대중음악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기형적인 구조에서 비롯됐다"며 방송에서 라이브로 연주할 수 있도록 기술적·정책적 지원을 해줄 것과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폐지할 것 등을 방송사에 요청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윤도현은 최근 한 방송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 출연을 거절한 것으로 전해져 이같은 움직임에 힘을 보태고 있다. 동료 가수와의 관계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포크 가수 및 원로급 가수들을 포함해 앞으로 1백명 이상의 서명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수·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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