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비리 보고받은 적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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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이 어제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 중엔 진실 여부가 의아스럽거나 사태의 본질을 잘못 인식한 듯한 대목이 적잖다. 특히 아들들의 구속 등 국민을 격분케 한 일련의 사건을 해명·사과하기 위해 자청한 자리임에도 여전히 불신을 남긴 것은 유감이다.

金대통령은 "(사정·정보기관으로부터)사전 정보를 받지 못했다.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 말은 김은성 전 안기부 2차장이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金씨는 대통령 3남 홍걸씨와 최규선씨 비위 사실을 청와대에 소상히 보고했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밝혔었다. 權씨도 "金씨가 보고한 내용을 다시 보고했고, 대통령은 '崔씨와 홍걸이를 잘 타일러라'고 했다"고 전한 바 있다. 우리는 상식적으로도 金·權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일반에 회자되던 대통령 아들들의 비위를 사정기관이 몰랐을 리 없고, 이를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상상이 안 간다. 그렇다면 청와대 비서실이 중간에서 차단했다는 말이 되는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사실이 그렇다면 이건 국정관리 측면에서도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제도 개선 이전에 관계자들을 단죄해야 한다.

아태재단 처리와 관련한 金대통령의 '전면 개편-완전 새출발' 발언도 좀 느닷없다는 감이다. 국민의 눈엔 권력형 비리의 온상처럼 비친 아태재단의 실상에는 아무 말 없이, 공익법인이어서 손을 못 댄다는 이유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돈을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걷어 어찌 썼는가라는 의혹은 이 정권이 끝나고서도 계속 불거질 사안일 것이다.

金대통령이 "나머지 임기 동안 흔들림 없이 국정 중심을 잡겠다"고 다짐했다지만 국민적 의혹을 받는 사안들에 대해 명쾌한 소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확실한 진상을 밝혀, 의구심을 털어내는 게 金대통령 자신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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