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제2부 薔薇戰爭제5장 終章 :왕실 혼사 반대에 부닥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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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문성왕으로서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큰 부담이었다.

아버지 신무왕은 흥덕왕이 죽은 뒤 계속되어 온 왕위 쟁탈전에서 마침내 승리하여 피의 전쟁을 끝내고 즉위하였지만 3개월만에 죽어 왕위 쟁탈전 과정에서 쌓여왔던 많은 갈등들을 해결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특히 신무왕은 30여년에 걸친 권력쟁탈이 결국 신라 귀족들간의 대립 때문임을 뼈저리게 느끼고,즉위하자마자 장보고를 불러 감의군사로 삼았던 것은 왕권에 개입하려는 귀족세력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겠다는 속셈을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신무왕은 또한 약속하였던 대로 태자 경응과 장보고의 딸 의영과의 혼인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던 것이다. 약속을 신성하게 여기는 신무왕은 이 기회에 귀족세력이 아닌 제3의 세력인 장보고와 정략적인 혼인을 올림으로써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귀족세력들을 견제하고,그 힘의 균형 속에서 왕권을 보다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신무왕이 3개월만에 급사하게 되자 그 많은 숙제는 아들인 문성왕에게 고스란히 물려오게 되었다.

문성왕도 아버지처럼 장보고의 제3세력에게 보다 큰 신뢰를 두고 있었지만 김양을 비롯하여 예징·의종 등 아버지를 도와 민애왕을 멸하는데 큰 공을 세웠던 공신들은 이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벌써 그러한 조짐들은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다. 공신들 중의 하나였던 김홍필(弘弼)이 논공에 불만을 품고 모반하다가 발각되어 섬으로 도망치는 일들이 그해 여름 7월에 벌어졌던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진해장군 장보고로부터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찾아온 사람은 장보고의 책사인 어려계로 그는 선대로부터 약속해온 용봉예서를 들고 찾아온 것이었다.

"대왕마마, 선왕께오서는 진해장군께 용봉예서를 보내심으로써 혈연지간을 맺으셨나이다."

어려계는 예서를 묶은 붉은 끈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예부터 붉은 끈으로 묶는 것은 양가의 혼약이 신불일지라도 깨뜨릴 수 없음을 뜻하고 있는 것이나이다. 또한 선왕께서는 도적을 죽이고 원수를 갚은 이후에 혼사를 올리기로 약속하였사오나 원수는 갚았으나 선왕께오서 붕어하심으로 차일피일 미루어졌다가 이제 3년 상이 다 끝났으니 약조하신대로 진해장군의 따님을 왕비로 맞아들이는 것이 가하다고 생각되나이다."

어려계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도적 김명을 죽이고 원수를 갚는 일은 이미 선왕 때의 일로 끝났으며, 또한 부왕의 갑작스런 붕어도 어려계의 말처럼 3년 상을 이미 치렀으므로 더 이상 경사스런 혼사를 미룰 명분이 없음이었다.

그보다도 문성왕 자신은 오히려 진해장군 장보고의 딸,의영과의 혼사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모든 근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문성왕이 입을 열어 말하였다.

"선왕 때 약조하였던 대로 진해장군은 사람을 보내어 혼약에 대해서 물어왔소이다. 이에 대해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아니되옵니다."

상대등 예징이 단숨에 소리쳐 간하였다.

"어째서 아니된다는 것이오. "

대왕이 묻자 예징이 대답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부부의 도리는 인간의 큰 윤리 중의 하나이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집안의 흥망과 나라의 존망이 여기에 달려있으니, 어찌 삼갈 일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장보고는 비록 병력으로 큰 공덕을 세웠다하나 근본이 미천한 해도인이니, 어찌 그 딸로 왕실의 배후를 삼을 수 있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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