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주인은 스타가 아닌 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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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영화제와 스타 사이엔 어떤 함수가 존재할까. 밀월 관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영화제에게 스타는 행사를 알리는 홍보 창구가, 스타에게 영화제는 그들을 지지해온 팬들에게 감사하는 사은 코너가 된다.

하지만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영화제 참석이란 명분이 스타들에겐 별다른 이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칸영화제조차 지난해 할리우드 스타 조디 포스터를 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하려다 거절당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국내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부산·전주·부천 등 '세계'를 지향하는 영화제가 세 개 있지만 스타 모시기란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 연륜이 쌓인 부산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전주·부천은 홍보 도우미·페스티벌 레이디란 깜찍한 명칭을 스타에게 붙여주며 관객 끌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11일 개막하는 부천영화제의 김홍준 집행위원장은 누구보다 이런 고충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서울에서 가까운 부천에서 열리는 행사이건만 다른 어떤 영화제보다 스타들이 찾지 않는다. 물론 행사 지명도도 작용하겠지만 영화제에 갈 시간에 다른 일로 '돈'을 벌겠다는 연예산업의 논리가 앞서기 때문이다.

그가 요즘 달라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컨대 부천시 공무원이나 주변 영화인들에게 "앞으론 스타들에게 '구걸'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굳이 몸을 낮춰가면서까지 스타를 불러들이는 데 힘을 쏟지 않겠다는 것이다. "신인 감독·프로듀서 등을 발굴·장려하는 부천의 특성에 맞춰 내실 있는 행사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영화제와 대종상 시상식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스타의 이름값 대신 영화팬의 열기로 축제를 살려나가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월드컵 응원 열기로 새삼 확인했던 한국인의 놀이적 취향, 축제적 기질을 영화로 연결하려는 주최측의 전략이 중요하지, 오지 않는 스타를 학수고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사실 영화제는 평소 극장에서 보지 못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는 산 교육장이다. 스타가 아니라 관객이 주인인 행사인 것이다. 지난 주말 사적인 일로 부천을 찾았을 때,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 펄럭이는 영화제 깃발을 보고 金위원장의 얼굴이 유난히 떠올랐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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