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청소년 감싸안은 간호사 윤여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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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준영이가 잘못된 길로 빠져든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우리 이웃들이 준영이를 잘 보살필테니 제발 소년원에는 보내지 마세요."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서울가정법원 소년재판부. 절도 등 다섯 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는 준영(15.가명)이 부모를 대신해 법정에 선 윤여현(41)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염기창 판사에게 간청했다. 그리고 준비해온 대안학교 입학 허가서와 이웃 사람들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염 판사는 "비행 청소년의 경우 부모도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은데 윤씨가 자기 일처럼 도우려고 애를 써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며 소년원행 대신 보호자의 책임 아래 정상 생활을 허락하는 보호관찰처분을 내렸다.

서울 서초구보건소에서 기초생활 수급자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방문 간호사로 일하는 윤씨가 준영이를 만난 것은 지난 10월. 몸이 아픈 동료 간호사를 대신한 우연한 방문이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으로 입원해 있고 아버지는 지체장애에 알코올 중독이라 무기력증에 빠진 상태였어요. 좁은 집안은 학교도 안 다니는 또래 친구들이 몰려와 난장판이 돼 있더라고요."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상황에 기막혀 하는 윤씨에게 준영이 아버지는 한달 후 재판을 알리는 소환장을 내밀었다. 일년 전 출석일수 부족으로 학교를 그만둔 준영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무심코 저지른 절도 등 다섯 가지 혐의 때문이었다.


서울 서초보건소의 윤여현씨가 29일 쉼터에서 생활하는 준영(가명)이를 찾아가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서초구청 제공]

슬그머니 일어서려는 윤씨를 다시 주저앉힌 것은 마음 깊은 곳 이야기를 아무 스스럼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준영이의 맑은 눈망울이었다.

"태어나 한번도 부모의 보호를 받은 적이 없더군요. 거짓말도 아니었고요. 단 한번 기회라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이후 재판까지 한 달여간 윤씨는 준영이를 위해 주말도 아끼지 않았다. 변호사 상담과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준비하는 것을 물론 준영이가 다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대안학교 입학허가서도 받아냈다. 준영이가 살고 있는 양재1동의 동장과 준영이가 일했던 주유소 사장님도 '주변의 따뜻한 보살핌만 있다면 바르게 자랄 수 있는 아이'라는 내용의 진술서(그림 참조)로 윤씨의 노력에 동참했다. 서초구보건소 배은경(48) 소장은 "이번에 준영이를 도와준 분이 열일곱명이나 된다"며 "이런 정성과 관심이라면 소외되고 방치된 많은 아이가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이제 우리 엄마 하면 안돼요?" "그럼, 난 듬직한 아들 하나 더 생겼네."

온 거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든 이날 손을 꼬옥 잡고 법정을 나서는 두 사람은 영락없는 엄마와 아들이었다.

김은하 기자

***[바로잡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자 11면 '비행 청소년 감싸안은 간호사 윤여현씨'기사에서 재판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판사의 이름은 '염기천'이 아닌 '염기창'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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