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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동네 손익계산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아열대성 스콜이 몇 차례 쏟아지면서 일상을 잠식했던 월드컵 열기가 걷히는 듯하다. 그러나 매스컴 일각에선 '대~한민국'을 내세운 그 열정과 광기를 재생산하려는 끈질긴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항목이 수익계산서다. 여러 기사를 종합해 보면 그 명세서는 이렇다. 선수 개인은 축구협회 포상금 3억원에 격려금과 모델료, 군 면제까지 얻는다. 히딩크 감독은 연봉·보너스·모델료 등 50억원 이상을 벌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는 4강 진출로 인한 직·간접적 경제효과가 26조원에 이른다고 계산해냈고, 한국경제연구원은 월드컵 경제파급 효과를 11조7천억원이라고 했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 상승 효과로 인한 이런 수익은 방송을 탄 광고판이 시청자의 무의식에 파고든 효과까지 고려했을 것이다. 녹색 잔디구장과 관중석 사이에 철벽 띠처럼 나열된 그 많은 광고판들, 선수들의 옷에 새겨진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로고들…. 이런 광고들은 축구를 인간과 땅이 어우러진 자연스런 운동으로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지만, 이미 자본주의를 숨쉬는 우리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이제 조금 눈을 돌려 영화동네로 가 보자. 지역의 고유한 정서와 정체성이 담겨 있으면서도 상품성을 가진 영화는 국가 이미지를 대변하는 문화상품이다. 그래서 한국 영화가 세계영화제의 최상급인 칸영화제에서 수상한다는 것은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입하는 국가문화 이미지 상승 효과가 있다. 그런데 칸영화제 진출이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축구처럼 억만금을 들여 외국에서 감독을 수입해 올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작품의 정신을 본질로 삼는 영화동네에선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자국 스타일과 혼을 보는 기준이 없어서인지, 혹은 유럽식 축구의 세계평준화 음모인지 축구에선 이기기 위해 감독의 수입을 개의치 않는다. 그 대신 국가 팀의 정체성을 자국 국적 선수의 구성으로 확보한다. 그러나 영화에선 국가 영화의 정체성을 선수에 해당하는 배우보다는 전체를 총괄하는 감독의 정체성에 일치시킨다.

이런 조건에서 '이태원 제작-임권택 감독-정일성 촬영'이란 한국 영화의 황금 시스템이 '춘향뎐'의 칸 본선 진출에 이어 '취화선' 수상이라는 성과를 달성했다. 세계 영화의 월드컵인 칸에서 3등상에 해당하는 감독상을 받은 '취화선'의 계산서는 이렇다. 60억원의 제작비 투자, 1백만명의 관객, 16억원의 적자. 이런 상황이니 이젠 영화도 국가문화란 명분은 던져버리고 상영방식을 바꿔야 할 판이다. 한국 대표로 나가는 영화는 극장 대신 시청앞 전광판에서 틀고 자막으로 대기업 광고를 계속 흘려 스폰서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그나마 영화를 지켜주는 정신적 본질을 포기하는 잔망스런 짓이니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우리의 치우침을 되돌아보자.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다양한 분야의 합이며, 한쪽에 치우친 싹쓸이가 아니라는 점 말이다. 한때 한국 영화 대박 붐이 팽배할 때 문학·연극 공연장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우려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제언할 것이 있다. 진실로 월드컵 흑자가 10조원대 이상이면 상당 부분 온 국민이 참여한 응원 덕이니 그 수익을 온 국민에게 돌려주는 게 마땅하다. 이를테면 세금감면같은 방식으로. 물론 그러지 못할 이유가 많을 터인데 그렇다면 수익의 일부를 공적자금으로 환원하는 방식은 고려해볼 만하지 않은가. 그건 축구가 자본주의 돈벌이판만이 아니라는 것, 모두가 즐기고 나누는 운동 축제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약력: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파리 7대학 영화기호학 박사.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우먼 타임스 편집위원. 한국영상문화학회 부회장.저서 『멜로드라마란 무엇인가』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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