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한마음 응원… 미래의 동반자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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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한 월드컵은 양국관계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또 월드컵을 계기로 깊어진 양국 국민간 관심과 이해를 어떻게 실질적인 교류로 확대해나갈 것인가. 본지는 지난달 29일 도쿄(東京)에서 조세형(趙世衡)주일 한국대사와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주한 일본대사의 대담을 통해 월드컵 공동 개최를 결산하고 향후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과 과제를 짚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데라다 대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방일 준비를 위해 도쿄에 머무르고 있다.

▶趙대사=이번 월드컵에서 한·일 양국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대회 운영이나 경기성적뿐 아니라 양국민 사이에 마음의 교류가 깊어졌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본 국민은 16강전 이후 "한국이 일본 몫까지 싸워달라"고 응원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양국 국민에게 크고 오랜 여운을 남겨 '마음의 벽'을 허물 것으로 봅니다. 정치로는 이룰 수 없는 결실을 남겼다는 점에서 월드컵은 대성공입니다.

▶데라다 대사=저는 두가지 면에서 큰 성공이라고 봅니다. 첫째는 정부 차원에서 양국간의 신뢰감이 깊어졌다는 점입니다. 월드컵 개막 전까지 양국 정부는 항공편·비자·테러·훌리건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상호 신뢰감은 향후 다방면에서 전개될 양국 정부의 공동작업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입니다.

둘째로는 전세계에 양국의 존재를 강하게 어필할 정도로 양국 국민이 잘 협력했다는 점입니다. 월드컵을 통해 양국 국민은 서로에 대해 관심과 친근감을 느꼈습니다. 일본 국민이 한국팀을 아시아의 대표로서 응원한 것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감정이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양국 국민 차원의 우호관계의 도약대가 될 것입니다.

▶趙대사=세계축구연맹(FIFA)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를 통해 열광적인 축구붐을 일으킨 양국에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가두응원은 세계적으로도 보기드문 축제가 돼 축구붐을 세계로 확산시키는데 기여했습니다. 일본 국민도 16강전 이후 각국 팀에 수준 높은 응원을 보냈습니다.

한 유럽국가의 대사는 "한국과 일본은 훌리건과 테러 문제를 동양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고 말하더군요. 일본 국민은 너무나 친절하고 따스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훌리건이 흥분할 여지가 없었고, 한국 국민은 정열적이지만 질서정연한 응원을 벌여 테러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데라다 대사=한국 정부의 초대로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관전했을 때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붉은 넥타이를 맸습니다. 관중석의 붉은 셔츠의 물결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경기 후엔 수십만명의 응원단이 질서정연하게 귀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젊은이들이 토해내는 에너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趙대사=지난해 말 이후 일본 언론은 한국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 왔습니다. 월드컵 기간 중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한국 관련 특집물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문화에 대한 일본 국민의 관심이나 인식 제고에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지금의 일본을 더 알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많이 소개해야 합니다. 한때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정확히 직시하면서도 장래의 친선우호를 위해 풀뿌리 차원에서 서로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데라다 대사=더욱이 올해는 '한·일 국민 교류의 해'가 아닙니까. 월드컵이 성공리에 마무리됐으므로 연말까지 교류는 더욱 확산될 겁니다.

매스컴을 통한 간접체험은 때때로 상대국에 대한 올바른 이미지가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월드컵 기간 중 TV를 통해 서로의 모습을 생생하게 관찰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것이 '한번 가보자'라는 심리를 자극해 양국민간의 교류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일본은 삿포로(札幌)에서 오이타(大分)까지, 한국은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격전이 치러진 개최지를 둘러보는 관광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趙대사=말씀하신대로 풀뿌리 차원의 인적 교류가 중요합니다. 항공기 증편이나 비자면제 등의 조치가 앞으로도 계속됐으면 합니다. 문화교류도 자유롭게 하면 인적 교류가 더 늘어날 겁니다. 여기에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경제교류까지 더해지면 한·일 양국의 역사는 그야말로 미래지향적인 윈윈(win-win)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데라다 대사=월드컵은 한·일 관계를 한층 발전시키기 위해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토록 하는 계기도 됐습니다. 사람과 물건, 그리고 금융·서비스의 흐름이 관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월드컵 이후의 과제로서 양국이 FTA를 지향하는 것이 양국의 안정된 관계구축에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趙대사=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가 공표한 '한·일 파트너십 선언'은 앞으로 누가 정치를 담당하더라도 되돌릴 수 없을 겁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도 이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겁니다.

▶데라다 대사=국민간의 관계가 건전하면 양국 정부에 대해서도 좋은 의미의 압력과 영향을 주게 됩니다. 반대로 아무리 정부간의 관계가 좋아도 국민간의 관계나 감정이 나쁘면 건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 국민은 마음이 활짝 열리게 됐습니다.

金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도 정상회담에서 양국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논의할 것으로 보입니다.

▶趙대사=월드컵을 계기로 한·일 양국엔 20개의 경기장이 건설됐습니다. 이를 활용하기 위해 각 개최지에서 한·일간의 축구리그를 발전시키면 좋겠습니다. 장차 북한과 중국까지 포함해 동북아시아의 국제축구대회를 열어 아시아 축구가 세계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면 더 낫겠지요. 이대로 가면 아시아에서 월드컵 우승국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어요.

▶데라다 대사=대환영입니다. 나아가 유럽이나 중남미 팀까지 불러들여 함께 하면 어떨까요. 양국의 20개 경기장을 무대로 국제경기를 자주 열면 4년 후의 월드컵에선 한국과 일본이 모두 4강에 들지 않겠습니까.

정리=남윤호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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