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우두"결승 불안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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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대회 결승전이 열리던 날 새벽에 룸메이트였던 호나우두가 갑작스러운 경련을 일으킨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새벽 4시쯤, 갑자기 그의 얼굴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불안감에 휩싸인 듯했다. 그의 얼굴은 우리팀 유니폼 색깔처럼 노랗게 변했다.

스물한살의 젊은 선수로서는 떨쳐버릴 수 없는 압박감을 느낀 것이다. 이런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지만 안타까운 것은 월드컵 결승 직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호나우두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가 경기장으로 돌아온 건 결승전이 열리기 불과 45분 전이었다.

호나우두는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녔다'는 최악의 평을 들으며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신동이 아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스물한살의 축구 선수일 뿐이다."

그는 98년 월드컵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었다. 약관의 자신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와 브라질 국민의 기대감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는 네골을 터뜨리며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렸지만 숨을 조여오는 압박감과 긴장은 마침내 결승전 새벽 폭발하고 말았다.

4년이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결승전 전날인 29일자 일본의 스포츠 신문들은 훈련 중인 호나우두의 사진을 1면에 크게 실었다.호나우두는 웃고 있거나, 심지어 크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불안감이나 긴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네살을 더 먹었고,아내과 아들을 얻었으며,2년간의 긴 부상을 떨치고 일어났다.

"모두들 4년 전 그 상황을 얘기하는데, 나는 신경쓰지 않는다. 지금 컨디션은 매우 좋고 편안하게 경기할 수 있다. 내가 골을 넣는 것도 좋지만 중요한 것은 브라질이 우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심약한 '신동'에서 여유있는 '황제'로 바뀌어 있었다.

요코하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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