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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스타 탄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74호 02면

발레리나 서희(24)를 처음 본 것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였습니다.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호두까기 인형’ 무대였죠. 잘 아는 무용과 교수님 한 분이 “꼭 봐둬야 할 친구가 있다”고 해서 따라간 자리였습니다. 세계 5대 발레단 중 하나인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군무(群舞)를 추는 ‘코르 드 발레(corps de ballet)’ 중 하나였지만 미국의 발레 잡지 ‘포인트(POINTE)’가 2009년 10월호 표지 모델로 발탁한 한국인.

궁금증은 이내 풀렸습니다. 무대를 단숨에 장악하는 그녀의 우아한 카리스마는 발레에 그리 눈이 밝지 못한 제가 봐도 강력해 보였습니다. 교수님이 약간 달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신이 내린 몸매에 탁월한 감정표현… 전 저 친구가 도대체 얼마나 성장할지 궁금해 죽겠어요.”

교수님의 기대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ABT가 그녀를 솔리스트로 승급시켰다는 소식이 지난 5일 날아왔습니다. 솔리스트는 발레에서 주요 역할을 담당하는 무용수로, 80여 명의 ABT 발레리나 중 7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한국인이 이 발레단의 솔리스트가 된 것은 처음이죠.

남들보다 빠르다 할 수 없는 열두 살에 한국에서 발레를 시작한 그녀로서는 12년 만에 이룬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 최고를 꿈꾸는 발레리나들이 득시글대는 ABT에서 그녀가 묵묵히 기울였을 노력을 생각해 봅니다.

자, 얼음판 위에선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천하를 평정했고, 수영장에는 박태환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물살을 갈랐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서구인들에게 이길 수 없다고 여겼던 기초 분야에서 일궈낸 귀한 결실들입니다. 덕분에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에 대한 관심도 훌쩍 높아져 수많은 꿈나무가 제2의 김연아, 제3의 박태환을 꿈꾸기 시작했죠.
이젠 발레 차례인가요. 주역 무용수로 날개를 단 서희가 어떻게 날아오를지 우리 모두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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