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괴된 아이들을 구해내는 떠돌이 개를 그려 히트한 할리우드 영화 '벤지'에 비하면 일본 영화 '하치 이야기'(고야마 세이지로 감독)는 심심하다.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상업적 전략 대신 주인을 위해 '견생(犬生)'을 다하는 한 강아지의 충정을 옛날 영화풍으로 차분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대적 배경도 1920~30년대다. 칙칙폭폭 증기 기관차가 달리고, 역 앞에는 허름한 단층 선술집이 늘어서 있다. 영화는 실화를 다뤘다고 한다. 자기를 아껴주던 우에노 박사(나카다이 다츠야)가 강의 도중 사망한 이후, 그가 퇴근했던 시간에 맞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역 앞에 나가는 강아지 하치가 주인공이다.
말 그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년간을 세상을 떠난 주인을 기다리며 역전을 지키는 하치에게서 사람에게서보다 더 진한 의리와 절개를 발견한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초롱초롱한 눈동자, 쫑긋 세운 귀, 왼쪽으로 말린 꼬리, 그리고 팔(八·일본어로 하치)자 모양으로 뻗은 다리 등 귀엽기 그지없는 강아지의 순정에 마음이 움직인다. 노숙자 비슷하게 거리를 헤매고, 사람들에게서 돌팔매질도 받지만 주인 향한 일편단심을 잃지 않는 하치는 분명 감동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마치 교육용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하치와 박사의 관계로부터 조직·상사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일본인의 정신구조를 읽는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28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