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주장을 큰 글씨로 써서 알리는 한 장의 종이. 대자보(大字報)다. 마오쩌둥(毛澤東) 시절 벽신문에서 유래됐다. 문화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게 1966년 홍위병들이 베이징 대학에 붙인 대자보였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대학이 아직도 반동분자의 손아귀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마오쩌둥은 이를 반대파 숙청에 요긴하게 써먹었다. 여론창구인 대자보를 정략적으로 이용한 사례다. 1547년 정미사화를 일으킨 불씨도 문정왕후의 섭정을 비난한 대자보였다. 이른바 ‘양재역 벽서(壁書) 사건’이다. 소윤이 대윤의 잔존세력을 청소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대자보를 읽고 글발을 벼린 사람도 있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 위화(余華)다. 학창시절을 문화대혁명과 함께 보냈던 그는 책이 없던 당시 대자보 읽기로 독서욕을 채웠다. 위화의 대표작 『허삼관 매혈기』에도 대자보 얘기가 나온다. 허삼관의 아내 허옥란은 허위 대자보 때문에 머리 한쪽을 삭발 당한 채 거리에 서 있는 수모를 겪는다. 열다섯 살부터 기생 노릇을 했다는 고발이었다.
위화는 한 인터뷰에서 “대자보엔 모든 것이 다 들어있었다. 대자보는 지금으로 치면 블로그였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의 1인 매체였다는 얘기다. 인터넷 세상인 21세기 대한민국의 대자보는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거쳐 트위터로 이동 중이다. 최근 방송인 김미화씨가 “KBS에 출연금지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파장이 확산된 게 단적인 예다. 트위터는 일종의 퍼나르기인 리트윗(RT) 기능 때문에 실시간 확산 속도가 상상 이상이다. 아마 김씨 본인도 이 정도로 빠르고 대대적으로 쟁점이 되리라곤 상상 못하지 않았을까. 대자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386세대가 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일이다.
기선민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