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곬 문학인생 채영주씨 타계 생애만큼 가는 길도 쓸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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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소설가 채영주씨의 타계 소식에 한국 문학계가 무척 아쉬워하고 있다. 만 40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평소 문단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던 그가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전혀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씨는 지난 15일 숨졌지만 그 소식이 전해진 것은 발인이 끝난 다음날인 18일이었다.

가족들이 친한 친구 몇몇에게 연락을 했고 이들이 출판사에 소식을 전해 알려진 것이다.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유해가 고향인 부산 앞바다에 뿌려진 뒤였다.

그를 등단시킨 문학과지성사측은 49재 날에 조그마한 추도행사라도 가지려 하고 있지만 가족들과 연락이 잘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술자리 등에 거의 어울리지 않았던 그는 숨지기 직전까지 창작 활동에 몰두했다. 이달 초 창간된 계간지 『문학생산』에 중편소설 '바이얼린맨'을 발표한 것을 비롯해 지난 2월에는 장편소설 『무슨 상관이에요』를 냈었다. 특히 '바이얼린맨'은 2회분이 다음 호에 연재될 예정이어서 문우(文友)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1988년에 등단한 채씨는 한동안 90년대 문학을 짊어질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평론가 박철화씨는 "내면 고백이나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일탈 같은 문학적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엄격한 문학정신 아래 묵묵히 자기 길을 간 작가였다"라고 회고했다.

그런 그가 99년에 필명으로 무협소설을 썼을 때는 말도 많았다. 단 한 번의 예외였을 이 사건이 한 순정한 전업작가의 생계 곤란 때문이었음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어떻든 그는 조용히 떠나갔다.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그 흔한 문학상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것은 세속적 교류보다 영혼의 치열한 투쟁으로서의 글쓰기에만 몰입했던 그의 오기 때문이었을까.

채씨의 죽음에서 문화산업에 편입되지 않으려던 고독한 예술가를 본다. 어쩌면 그것은 돈과 유행에서 비켜나 스스로 험한 길을 가는 예술가, 즉 순례자의 모습이리라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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