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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샤 클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골을 넣은 다음에 조심해야 한다."

지난 21일 영국과의 8강전에서 브라질 호나우디뉴 선수의 퇴장을 지켜본 방송 해설자의 말이다. 이날 호나우디뉴는 펄펄 날았다. 전반 막판에 히바우두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데 이어 후반 5분에는 프리킥 역전골까지 터뜨렸다. 그러나 흥분이 지나쳤을까. 7분 후 호나우디뉴는 영국 수비수의 발목을 차는 반칙을 범해 레드카드를 받고 말았다.

국내외 언론들은 호나우디뉴의 퇴장을 '가린샤클럽(Garincha club)에 가입했다'고 표현했다. 가린샤클럽은, 월드컵에서 골을 터뜨린 후 퇴장당한 선수들을 가리킨다. 1962년 칠레 월드컵 당시 펠레와 함께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공격수 가린샤가 칠레와의 준결승에서 두 골을 넣었으나 종료 직전 수비수를 발로 차 퇴장당한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가린샤는 '작은 새'란 뜻의 애칭으로, 그의 본명은 마누엘 프란치스코 도스 산토스다.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왼쪽보다 짧은 기형이었지만 '드리블의 제왕'으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선수다.

골을 성공시켜 흥분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의욕이 지나치다 보면 불필요한 반칙을 범하게 될 가능성도 커진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대멕시코전에서 첫골을 성공시키고 나서 불과 2분 후에 백태클로 퇴장당했던 하석주 선수의 기억이 새롭다. 한국은 결국 멕시코에 역전패했고, 河선수는 오랫동안 가린샤클럽의 후유증을 앓아야 했다.

가린샤클럽의 악몽은 비단 河선수나 호나우디뉴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기장 밖에서도 월드컵 승리의 감격이 지나쳐 레드카드를 받는 팬들이 많다. 이번 월드컵 최대의 명물로 등장한 거리응원에서 옥에 티처럼 발생하는 일탈행위가 한 예다. 스페인과의 8강전 승리 이후 무면허 음주운전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결국 인생에서 퇴장당한 셈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에도 가린샤클럽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어 걱정이다. 월드컵 승리의 기쁨에 취해 6월을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 주가는 곤두박질 치고 원화 가치는 달갑지 않은 상승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 부진과 남미 경제위기가 심화되면 월드컵 이후의 경기를 낙관할 수 없다는 진단이 늘고 있다. 월드컵 대성공 직후를 조심하자. 오늘 경기에 나서는 태극전사들이나 거리로 나서는 팬들, 그리고 한국 경제에 이르기까지 가린샤클럽만은 피해가도록 하자.

손병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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