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손'이운재 4강 대어 낚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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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처음 맞이하는 승부차기.

이번 대회 이전 다섯 차례 참가했던 본선에서는 무승부가 허용되는 조별리그만 치르고 탈락했기 때문에 단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승부차기였다.

그리고 한국의 골문은 승부차기에 특히 강한 이운재(29·수원 삼성)가 지키고 있었다.

한국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에서 한국 네 명, 스페인 세 명이 찰 때까지는 연신 골네트를 흔들었다. 스페인의 네번째 키커는 이날 빠른 발로 한국의 오른쪽 측면을 유린했던 호아킨이었다.

그러나 호아킨의 슛은 기어코 '승리의 수호신' 이운재의 손에 걸렸다.

연장까지 1백20분간 스페인의 파상공세를 모두 막아내며 승부차기까지 몰고간 이운재가 한국의 4강행까지 결정지은 것이다.

이운재는 거스 히딩크 감독 체제에서 단 한 차례도 대표팀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감독의 신뢰를 받아왔다.

그러나 김병지가 지난해 말 대표팀에 복귀하면서 치열한 주전 경쟁을 벌여야 했다.

특히 유럽 전훈을 기점으로 김병지의 평가전 출전이 많아지면서 후보로 밀릴 가능성까지 엿보였다.

이운재가 본선무대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는 계기는 지난 4월 말 서귀포 전지훈련이었다.

전훈에 이어 벌어진 스코틀랜드·잉글랜드·프랑스와의 연속 평가전을 통해 이운재의 컨디션이 김병지보다 더 좋다고 판단한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를 앞둔 지난 3일 김현태 골키퍼 코치를 불렀다.

김병지도 그리 나쁜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이운재의 컨디션이 더 낫다고 생각했던 김코치도 히딩크 감독의 의견에 동의했다. 두 선수 간의 치열한 경쟁은 그렇게 끝났다.

월드컵 개막 후에도 두 선수의 교대 기용이 한때 예측됐으나 히딩크 감독은 폴란드를 무실점으로 막은 이운재를 굳이 교체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운재 역시 미국과 이탈리아에 어쩔 수 없는 골을 하나씩 내줬을 뿐 히딩크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이운재는 평소 승부차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 바로 그의 장점인 정확한 판단과 안정감이 그 바탕이다.

국내 프로축구에서 이운재의 승부차기 승률은 90%가 넘으며 올초 북중미 골드컵 멕시코와의 8강전에서 소사와 이에로의 슈팅을 연속으로 막아내며 골드컵에서의 유일한 승리를 이끌어낸 바 있다.

경희대 재학 중이던 1994년 1월 태극마크를 처음 단 이운재는 미국 월드컵 독일전에서 후반 최인영과 교체투입돼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폐결핵 보균 사실이 드러나 국가대표의 꿈을 접어야 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도 김병지와 서동명에 밀려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벌어진 월드컵에서 다섯 게임에 모두 출전, 단 2실점하면서 4강 신화 창조의 주역이 됐다.

이운재는 이제 '야신상'(최우수 골키퍼)을 놓고 독일의 올리버 칸과 맞대결을 하게 됐다.

광주=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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