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탈북자 정착은 '우리'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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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내부의 경제난이 악화돼 탈북자들이 양산되고 이들의 남한 입국이 증가하면서 벌써 6000명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1997년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정부 차원에서 탈북자들의 남한사회 정착을 지원해 왔다. 탈북자 정착지원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통일부에서는 실행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계의 견해를 수렴, 지난 23일 탈북자 수용정책 개선안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의 탈북자 정책개선안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째, 탈북자 정착지원정책 자체의 개선이다. 현금지급 위주의 '보호' 정책에서 탈피해 탈북자들의 자립.자활능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는 것이 핵심 골자다. 그동안 현금지급 위주의 정착지원과 탈북자에 대한 특혜정책이 '경쟁사회'에서 적응하기 위한 탈북자들의 자립.자활의지를 저해한다는 평가가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탈북자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의 전체 규모는 유지하되, 탈북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정착금은 대폭 축소하고 나머지 지원금은 직업훈련 장려금.취업 장려금.자격취득 장려금.기초직업훈련수당 등으로 활용하게 된다. 앞으로 탈북자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한 이후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지원금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탈북자들의 지역사회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개인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민간정착 도우미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둘째, 탈북자들의 정착 환경 개선이다. 이를 위해 위장 탈북과 범죄자의 입국을 방지하고 국내 거주 탈북자를 상대로 한 브로커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감시를 대폭 강화해 나가게 될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법에는 위장 탈북과 테러.살인 등 범죄행위를 저지른 탈북자의 입국을 불허하도록 규정돼 있다. 탈북자가 대규모로 입국하는 상황에서 법 규정에 따라 입국 전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조치로 인도적 원칙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에서 올해에 입국한 탈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3% 이상이 브로커를 통해 입국했고, 브로커 비용으로 1인당 평균 400만원 정도를 지급했다고 한다. 정착금이 다른 용도로 전용될 경우 탈북자들의 초기정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브로커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감시활동은 필요하다고 본다. 더구나 '북한인권법'이 시행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브로커들의 활동이 더욱 노골화할 가능성도 있다. 브로커들이 자신의 영리를 위해 국내 입국을 조장하거나 심지어 북한 내 주민의 기획탈북을 시도하는 행동은 지양돼야 한다. 다만 브로커의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감시를 강화하되, 실제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특히 순수한 탈북자 인권보호 차원에서 움직이는 탈북지원단체의 활동이 위축돼서는 안 된다.

끝으로 정착금 규모를 축소하면 단기적으로 탈북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정착금을 축소하고 자립능력을 제고하려는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선 지역사회의 이해와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탈북자들이 실제로 정착하는 지역단위 지원시스템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또한 탈북자 문제에 대한 지역사회 주민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탈북자들의 남한 사회정착은 탈북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남북한 통합의 시험대로서 '저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탈북자들의 지역사회 정착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탈북자를 대상화하여 단순히 지원한다는 인식에서 탈피해 같은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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