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강 탈락한 伊의 과민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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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일 월드컵 16강전에서 한국에 패해 탈락한 이탈리아의 반응이 지나치다. 한국에 대한 근거없는 비난과 비방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다. 특히 축구 관계자뿐만 아니라 정부 고위 관료들까지 이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유감이다.

이탈리아는 1990년 이후 한번도 월드컵 8강 진출에 실패한 적이 없는 축구 강국으로 이번에도 16강전에서 탈락하리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개인 기량이나 전술, 역대 전적 등 객관적 평가가 한국 축구보다 한수 위였던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믿음이 컸던 만큼 탈락에 따른 충격이나 실망·분노가 클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뛰어난 감성을 지닌 국민성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예상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같은 반응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이 뒷받침될 때 설득력이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16강전에서 보여준 이탈리아 축구는 한마디로 실망적이었다. '아주리 군단'의 명성이나 위용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에메 자케 전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이탈리아는 진부한 경기를 했다"고 혹평했고 르몽드는 투지 부족, 선수 간 경쟁심, 전략 미숙, 선수 노령화 등을 패인으로 지적했다. 한국의 해설가들은 공중 볼을 다투는 점프 때마다 교묘하게 심판의 눈을 피해 팔꿈치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더티 축구'를 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탈리아는 심판을 탓하기에 앞서 자기 반성부터 해야 한다. 한국을 과소평가했다가 당황한 것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한다. 세계 각국의 반응이 이탈리아 주장과 동떨어진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특히 안정환 선수가 소속한 페루자 구단주가 安선수와 한국 축구에 대해 상식 이하의 비하 발언을 한 것은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다.

한국은 여유를 갖고 승자의 아량을 보일 때다. 스포츠는 스포츠일 뿐이다. 패자의 불평 불만에 일희일비(一喜一悲)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8강전에서도 한국팀이 멋진 기량으로 다시 한번 세계가 깜짝 놀라도록 선전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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