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코앞인데 수해 무방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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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8일 오후 4시 서울 성북구 종암동 1·2구역 재개발 공사현장. 가파른 경사지에 아파트 건설공사가 한창이다.공사장 곳곳에 생긴 웅덩이의 흙물은 비탈길을 타고 주택가 앞까지 흐르며 각종 건축 폐자재가 현장에 쌓여 있다. 파헤쳐진 공사장은 거대한 흙더미로 둘러싸여 장대비가 내릴 경우 토사가 유출될 위험이 있다. 주택가와 연결된 절개지는 2m 높이의 임시 담으로 막혀 있지만 저지대인 주택가로 떨어진 흙더미는 속수무책이다. 공사 관계자는 "배수로를 갖추고 흙더미는 방수포로 덮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난해 집중 호우로 20여가구가 침수 피해를 당했다. 주민 金모(50·여)씨는 "지난해에는 갑자기 빗물이 지하실을 덮치고 무릎까지 차올라 쌀과 각종 전자제품을 버렸다"며 "건설현장의 흙더미가 빗물을 타고 저지대인 우리 집으로 흘러내리면 어떻게 하나"고 걱정했다.

지하철 공사장도 침수 위험이 산재해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롯데백화점 강남점 앞. 내년 6월 개통예정인 분당선(왕십리~분당) '영동'역 공사작업이 한창이다. 아직 계단이 안만들어진 출입구 네곳의 7m아래 바닥 곳곳에 물이 고여 웅덩이가 생겼다. 출입구 옆에 쌓인 흙더미는 비가 내릴 경우 계단이 만들어질 경사지를 타고 역 안으로 흘러내릴 듯하다.

경사지 중간 중간에 쌓인 건축자재와 출입구 옆에 무방비로 노출된 플라스틱 관더미도 위태롭다. 공사 관계자는 "공사장 내부에 배수로가 설치돼 걱정없다"면서도 "지난해처럼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지면 인력으론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게릴라성 호우로 서울에서는 42명이 숨지고, 9만5천여세대가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오는 24일부터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된다는 기상청 예보가 나왔으나 아슬아슬한 경사지의 주택가 공사현장, 폭우에 잠길 염려가 있는 지하철 공사장 등 수해 위험지역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서울시는 각종 공사장·지하철역 등 8백여곳을 조사,토사유출 방지시설 설치·배수로 마련 등 수해 예방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언제라도 주택가로 흙더미를 토해낼 듯한 재개발 아파트 공사현장이나 각종 폐자재가 쌓여 있는 지하철 공사장은 아직도 점검의 손길이 필요하다.

특히 지방선거 후 시장 및 구청장 교체에 따른 업무 공백도 우려돼 장마대책을 서둘러 마련해 인재(人災)와 관재(官災)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4천5백여원을 들여 1999년부터 진행 중인 펌프장·하천제방 보수 등 수해대책 5개년 계획은 아직 공정률이 저조하다. 빗물펌프장은 목표치인 29개 중 8개만 완성됐으며, 중랑천·성내천·반포천 등에서는 제방 보수와 홍수 방지벽 설치공사가 한창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목표연도를 2003년에서 2006년으로 연장했다.

서울시 정동진(丁東鎭)치수과장은 "수해 취약 시설물을 점검하고 대책이 미비한 곳은 지속적으로 관리해 장마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자치부 산하 국립방재연구소 심재현 연구관은 "아스팔트 위주인 도시에서는 자연녹지가 부족해 갑자기 불어나는 빗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하수도나 하천으로 그대로 유입되므로 홍수 피해가 커진다"며 "각 지자체에서 공사장 점검 등 사전 대비도 필요하지만 '지역별 침수 예상도'나 '재해 위험지도' 등을 만들어 주기적으로 보완·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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