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되려면 골프보다 사주 배워라"<김남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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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4면

1년 전 세간의 관심을

끌며 역술인의 인생을

시작했다.

단골은 대부분

기업 간부들.

인사 문제를 놓고

자문하는 경우가 많다.

사주를 보면

그사람이 어디서

일해야 할지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1년 전 역술인이 된 김남용(金南容·58)씨.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에서 '십간사주 연구소'를 운영하는 그는 뜻밖의 변신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경기고·서울대 토목공학과 졸업, 엔지니어링 회사 사장 등의 경력 때문이었다.

직업 역술인이 돼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더위를 재촉하는 여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2일 오후 그의 연구소를 찾아갔다.

그는 파란색의 개량 한복을 입고 있었다. 과거 회사원 시절처럼 넥타이를 맨 양복 차림이 아니었다. 그가 건넨 명함에는 이름 앞에 '남각(南覺)'이라는 '호'가 붙어 있다. 이제 '김사장'이 아니라 '남각선인(南覺仙人)'이나 '남각 선생님'으로 불린단다.

"지금 생활에 아주 만족해요. 이전에는 내 생활이 없었으니까요. 회사 프로젝트 중심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접대 때문에 늘 시달려야 했죠. 대부분의 CEO들이 자기가 진정 원하는 일은 못하고 살잖아요. 회사 목표 달성에 자기 시간을 전부 투자할 수밖에 없으니…."

그는 오전 9시에 출근해 오전 10시에 '컨설팅'을 시작한다. 오후 6시면 일과 끝. 저녁 시간에는 집에서 사주 전문서적을 공부한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어 계속 빠져들게 된다고 했다.

ROTC 공병장교로 제대해 경부고속도로건설공사·도로공사 등을 거친 그는 엔지니어링 회사에 오랫동안 몸담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기아그룹 계열의 기산엔지니어링 대표이사, 한진그룹 한국종합 도로사업본부장, 금호엔지니어링 부사장을 지낸 뒤 지난해 봄 대기업 경영자로서의 생활을 접었다. 사주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초 사주를 본다는 회사 선배가 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정확히 알아맞히는 '신기한' 일을 겪고 나서다.

CEO 출신이다 보니 그의 손님 중에는 대기업 간부들도 많다. "내일 아침 중요한 결정을 내릴 회의가 있다"면서 밤늦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영업과장을 바꿔야 하는데 후보자 중 누구 사주가 적합하냐"는 등의 인사 관련 상담도 많다.

대기업 경영자 출신이라는 얘기를 듣고 무턱대고 찾아온 '초보 경영자'가 딱해 보여 본의 아니게 법률·세금 문제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경우도 생긴다. 공학도·엔지니어 출신의 그는 사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사주는 과학이며 통계학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 태양계 내 천체(天體)들이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사주, 곧 연·월·일·시가 결정되지요. 생물체가 별들의 파장에 적응하면서 두뇌 세포가 다르게 형성되지요. 때문에 사람들의 숙명이 달라집니다. 숙명은 곧 성격이기도 합니다."

같은 사주라도 후천적 요소에 의해 성격이 달라질 수 있으나 거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CEO 출신답게 "사주를 보면 개개인의 성격이 기획, 연구·개발, 영업, 관리, 현장 추진력 중 어느 쪽에 적합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자기 사주를 정확히 알고 그에 맞는 분야·직위·직종에서 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 '사주=지피지기학(知彼知己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CEO의 꿈이 있는 직장인들은 골프보다 사주를 배워라."

그가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기업 사장이 될 사주란 게 따로 있는 것일까.

"기업 사정이나 사업 종목에 따라 그때그때 CEO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다르잖아요. 창의력 있는 사장이 필요할 경우가 있는가 하면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서는 영업력이 뛰어난 사장이 절실하고요. 골프보다 사주를 배워야 합니다."

대기업 간부가 역술인으로 바뀐 데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가장의 변신에 아내(54)와 아들(24)·딸(22)은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역시 신세대인가봐요. '아빠가 재미있는 일을 시작한다'며 오히려 부러워하더라고요. 집사람은 처음엔 친구들한테 쉬쉬했는데 이젠 '사주 좀 봐달라'고 친구들이 아내한테 안달한대요. 덩달아 폼을 재는 것 같아요."

"혹세무민하려고 역술인이 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농담했던 친구들도 사주에 대해 알게 된 뒤엔 '진지한 컨설팅'을 요청하는 고객이 됐다.

그는 사람들이 사주를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책을 내년에 펴낼 계획이다. 'CEO가 가르치는 신기한 십간사주'라는 제목도 지어놓았다.

CEO 시절과 비교해 그의 요즘 수입이 어떤지를 물었다.

"글쎄요, 생활할 만해요. 아내도 제 수입을 정확히 몰라요." 그는 답변 대신 미소로 기자의 질문을 피해 나갔다.

글=성시윤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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