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제회계기준 일률 적용은 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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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현재 감가상각 방법으로 정률법을 사용하는 많은 기업은 IFRS 적용에 따라 정액법으로 변경해야 한다. 매년 투자를 지속할 경우 세금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또 은행도 IFRS에 따라 대손충당금이 적어져 세금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건설업도 불만이다. 앞으로 건설회사는 예약 매출에 대해 인도 시점에 수익을 인식해야 하나 세법은 여전히 공사진행률에 따라 매출을 인식해 세무조정 부담이 늘어난다. 후입선출법 폐지에 따른 세금부담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점은 우리가 상장기업의 모든 재무제표를 IFRS에 따라 작성할 것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2005년부터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할 때만 IFRS를 의무적으로 적용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개별재무제표는 자국 기준과 IFRS 중에서 선택적으로 적용하도록 허용했다. 즉 개별재무제표는 개별국가의 선택에 맡기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EU 회원국 중 영국은 개별재무제표는 영국 회계기준과 IFRS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특히 우리와 같은 대륙법 국가인 독일·프랑스 등은 아예 개별재무제표 작성 때 IFRS를 사용하는 걸 금지하고 자국 회계기준을 사용해 작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연결과 개별 재무제표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며, 목적이 다른 재무제표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연결재무제표는 투자자에게 경제적 실체의 재무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하는 반면 세금 부과는 기본적으로 법적 실체를 기본으로 한 개별재무제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EU는 개별재무제표를 작성할 때 특정 기준을 요구하지 않고, 대부분의 기업은 자국 기준에 따라 개별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이에 근거해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 이 경우 과세 당국은 IFRS의 움직임에 구애되지 않고 일관되게 조세정책을 펼 수 있다. 기업 역시 세법과 자국 회계기준의 범위 내에서 의사결정을 해 자기의 상황에 적합한 조세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것이다.

또 IFRS는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의 재무정보 비교 가능성도 떨어뜨릴 것이다. 한국은행 등은 매년 기업실적을 집계하기 위해 개별재무제표를 사용하고 있다. 이때 IFRS가 적용된 상장기업의 개별재무제표와 한국회계처리기준을 적용한 비상장기업의 개별재무제표를 사용한다면 이를 비교하기가 힘들게 된다. 많은 EU 국가는 상장·비상장 기업의 개별재무제표는 자국기준에 의해 작성하도록 함으로써 납세 편의와 최소한의 재무정보의 비교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EU처럼 상장기업의 연결재무제표에 대해서만 IFRS를 도입하고, 개별재무제표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는 쪽으로 정책이 수정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적어도 상장기업의 모든 재무제표에 IFRS를 적용하는 정책 방향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과 같은 기업과 과세 당국의 어려움은 해소될 것이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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