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구 동작그만" 철벽수비 송종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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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경기 시작 직전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송종국(23·부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포르투갈과 맞서야만 하는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기우였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었을 뿐이었다.

심판이 경기 시작 휘슬을 분 뒤 그라운드에서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루이스 피구(포르투갈)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넓은 운동장을 마음대로 종횡무진하던 피구였지만 이날만큼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송종국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특유의 개인 돌파가 이뤄지지 않자 피구는 최전방 공격수 파울레타의 발끝에 공을 올려주고자 했다. 그러나 송종국을 속일 수는 없었다.

경기가 풀리지 않자 피구의 얼굴에는 짜증스러운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송종국의 마크에 오기가 오른 피구는 일부러 송종국의 방향으로 공을 몰고 갔지만 한번도 뚫지 못했다. 육상 선수 출신인 피구에게 스피드에서도 뒤지지 않았다. 초조해진 피구는 송종국에게 백태클을 하며 분풀이를 시도하기도 했다.

공세의 고삐를 쥐기 시작한 후반전, 이번에는 송종국이 포백의 오른쪽 사이드윙에서 미드필더로 과감하게 올라가면서 공격의 시발점을 제공했다. 그라운드의 주도권을 쥐락펴락하는 그의 플레이에 포르투갈 선수들은 넋이 쏙 빠졌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던가."말이 좋아 멀티플레이어이지 사실 어디 하나 잘하는 구석이 없어 여기저기 옮겨다닌 것 아닙니까"라는 푸념처럼 한동안 그에게는 마땅한 포지션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약점'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눈에는 어떤 포지션도 소화해낼 수 있는 '장점'으로 보였다. 지난해 두바이 4개국 대회 이후 그는 한번도 빠짐없이 대표팀 선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6강 티켓을 거머쥐면서 자신을 발탁한 히딩크 감독에게 보란 듯이 보답했다.

인천=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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