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메르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60년 5월 1일은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악몽의 날이었다. U2 정보기가 이란 국경 가까운 소련 영공에서 격추되면서 퇴임 1년을 앞둔 그의 모스크바 방문 계획이 취소됐다. 첩보 항공기에 의한 대소 정보수집도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격추사건이 일어난 지 불과 3개월 만인 그 해 8월 미국은 소련의 핵능력을 탐지할 수 있는 위성 첩보사진을 회수하는 데 성공했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이같은 비밀업무는 '코로나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수행됐다. 그 작전은 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호 발사 성공으로 미국의 미사일 능력이 크게 뒤진 것으로 알려진 직후에 개시됐다. 서방국가들을 감탄하게 만든 것은 코로나 작전이 35년 동안 비밀에 부쳐졌다는 것이다.

냉전시대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또 하나의 암호명은 '아작스 작전'이다. 53년 이란 쿠데타로 당시 모사데크 정권이 전복되고 뒤이어 팔레비왕이 등장했으며 호메이니 혁명이 일어난 79년까지 25년 동안 석유의 안정적 공급 전략이 주요 임무였다. 이 비밀작전도 거의 40년 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의 철저한 비밀주의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이 최고 기밀문서로 다뤄왔던 핵전략 수정계획(NPR)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그는 기밀을 지키지 못한 관련 부서 책임자들에게 엄청 화를 냈다. 미국 행정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그는 기밀유지를 강조하고 참모들의 충성도를 비밀엄수 능력에 따라 판단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미 행정부 주요 관리 5명이 이 '원칙'을 어겨 옷을 벗었다.

최근 부시 대통령이 전격 발표한 국토안보부 신설안은 '오메르타(Omerta)'라는 암호명으로 비밀작전처럼 진행돼 왔다. 이 암호명이야말로 부시 행정부의 비밀주의 상징이 될 것이다. 오메르타는 '입을 열지 않겠다는 약속' 또는 '경찰에 묵비권을 행사한다는 약속'을 의미하는 마피아 용어였다. 마피아들은 오메르타를 지키지 않는 부하들을 살해했다. 그들에게 오메르타는 불가침적인 사항이었다. 영어가 이 단어를 빌려 '친구를 보호하기 위한 침묵'또는 '묵계'라는 뜻으로 쓰고 있다.

어느 정부의 지도자가 국가 기밀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국민의 알 권리도 잘 충족시켜 나가는지 그 통치능력이 주목되고 있다. 특히 알 권리는 민주주의 작동원리의 핵심이기 때문에 더욱 우리의 주요 관심사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