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리굿 한판해금 그리고 거문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7면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 평화의 광장. 다듬이와 목어(木魚)소리를 타고 삼라만상이 깨어난 후 인간과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 한마당이 펼쳐졌다. 이날 장엄한 서곡으로 월드컵 전야제의 시작을 알린 첫마당 '설렘'에서 태평무 등 전통춤을 바탕으로 한 무용극의 음악을 작곡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영재(金泳宰·55·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씨다.

김씨는 해금과 거문고의 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깊고 걸걸한 남성성으로 '악기의 어른'예우를 받는 거문고와 여성적 이미지의 해금 등 두 악기 모두에 능하다. 하지만 관악기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악기를 잘 다룬다. 가야금·아쟁·설장구 연주는 물론 거문고 병창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악기를 허리춤에 대고 서서 연주하는 해금 병창도 그가 복원했다.

어디 그뿐인가. 김씨는 작곡가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다. '분례기''관촌수필' 등 TV 드라마 음악도 맡았다. 가장 널리 연주되면서 FM 방송에서도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곡은 해금과 기타를 위한 2중주 '적념(寂念)'이다.

김씨가 국악기를 처음 잡은 것은 14세 때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민속악의 요람인 국악예술학교에 입학한 1961년. 그후 40년간 갈고 닦아온 그의 음악세계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오는 25일 오후 7시30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김영재 국악인생 40년 기념 연주회'가 열리는 것.

프로그램은 김씨가 1988년 보유자 후보로 지정받은 무형문화재 제16호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를 비롯, 해금 과 창작곡 연주로 꾸며진다.'신쾌동류 거문고 산조'는 남현우·이형환·이은우·이용우·김흥중·한민택 등 그가 국악예고·전남대·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배출해낸 제자들이 합주로 들려준다.

김씨가 직접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거문고·해금 산조와 더불어 그가 자랑하는 거문고 병창이다. 김씨는 신쾌동 선생에게 17세 때 배운 거문고 병창 '팔도유람가''적벽가 중 새타령'등을 연주하는 유일한 국악인이다. 또 이번 공연에서 초연되는 '서울 무가(巫歌)'도 관심거리다. 서울굿 반주음악을 해금 독주곡으로 재구성한 곡으로 김씨가 직접 활을 잡는다. 경서도 시김새를 이용해 작곡한 창작 민요 '강이 풀리면'(김동환 시) '해곡'(海曲·양주동 시) '물레'(김억 시)도 유지숙 명창의 연주로 선보인다. 김씨는 "10년 뒤로 기념무대를 미루려고 했으나 연주 기량이 녹슬기 전에 후배들에게 좋은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공연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예부터 우리 전통악기는 노래나 춤·굿의 반주음악으로 사용돼 왔다는 게 김씨의 지론이다. 사실 그가 국악에 처음 입문한 것도 무용이다. 서울 마포에서 자라난 그는 동네에서 굿이나 농악판이 벌어질 때면 빼놓지 않고 구경했고 공업계인 동도중에 진학한 후에도 서울 낙원동에 있는 김천흥 고전무용연구소에서 춘앵무·승무·살풀이를 배웠다. 얼굴이 예쁘장하고 살결이 고와 무용가가 되는 것이 제격이라면서 동네 아주머니가 김천흥 선생에게 소개한 것. 국악예술학교에도 무용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하지만 무용과에 남자는 단 한명뿐이었다. 그래서 벽사 한영숙이 "얼굴이 예쁘고 춤태가 곱긴 하지만 여학생들이 옷 갈아입기 힘드니 춤보다 악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악기로 전공을 바꾼 후에도 그는 춤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한영숙·이매방·최현·강선영·이숙향·배명균·조흥동·배정혜 등 한국춤의 명인들 반주음악을 도맡아했다. 창작무용을 위해 작곡도 많이 해주었다.

국악인생 40주년 기념으로 낸 음반 '몸짓·소리·농현·여운'(신나라뮤직)도 그의 무용음악 작품집이다. 월드컵 전야제에서 선보인 '새 생명의 환희'를 비롯해 철가야금 짧은 산조, '광대의 꿈''도라지 그 산천''가사호접'등이 수록돼 있다. 국악예고 후배인 작곡가 박범훈(54·중앙대 부총장)씨는 "김씨의 작품은 모두 춤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인이 아니면 연주해도 제맛이 나지 않는다. 가락과 장단과 멋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02-323-0170.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김영재 교수는…

1947 서울 출생

1967 서울 국악예고 졸업,

신쾌동(거문고)·지영희(해금) 사사

1966~75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세계 순회공연

1986 아시안게임 개막식'강강술래''장구춤'작곡

1988 중요무형문화재 16호(거문고산조) 준인간문화재 지정

1988 올림픽 개막식 '꼭두각시'작곡

1998~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2002 월드컵 전야제'설렘'작곡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