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이 추진중인 '유사법제' 왜 문제인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요 즈음 신문을 보면 '유사법제'란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새로운 법 같은데 무슨 뜻인가요.

'유사법제'는 특정한 법의 이름이 아닙니다. '유사시'란 단어를 알고 있지요? 한자로 '有事時'라고 쓰는데, 한마디로 '위기상황''비상사태'지요. 법제(法制)는 '법과 제도' 또는 '법률로 각종 제도를 정한다'는 뜻이에요. 결국 '유사법제'란 '위기·비상사태에 대비해 각종 법·제도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목적 아래 자민당이 지난 4월 제출한 법안이 '무력공격사태법안·자위대법 개정안·안전보장회의 설치법개정안' 등 3개예요.무력공격사태법안은 '위기상황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있고, 자위대법 개정안은 '위기상황시 자위대가 원활하게 군사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조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지요. 안전보장회의는 일본 정부의 최고 지도자인 총리가 위기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소집하는 국가최고대책회의입니다. 이 법안들이 통과하면 2년 안에 국민보호법 등 세부적인 내용을 만들겠다는 것이 정부·여당의 생각이에요. 이렇게 되면 총리는 위기상황시 자위대의 출동을 명령하거나 국민의 각종 권리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유 사법제란 한마디로 '국가를 지키는 법'이네요. 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데 왜 일본 내에서도 반대가 많은가요.

유사법제란 단어만 들으면 그 말이 맞지요. 그런데 찬찬히 뜯어보면 문제점이 많아요. 우선 헌법에 어긋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일본헌법 9조는 군대를 두거나 전쟁하는 일을 금지하고 있어요. 이 조항 때문에 '평화헌법'으로도 불리지요.

평화헌법은 과거 한국·중국을 침략했던 일본이 1945년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진 후 만들어졌어요. 일본이 다시 전쟁을 벌여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지요. 그런데 유사법제는 본격적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길을 터주기 때문에 평화헌법의 정신에 어긋나지요.

침 략하는 외국에는 맞서 싸울 수밖에 없고,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잖아요.

물론 침략에 맞서 국민의 생명·재산·자유를 지키는 것은 정부의 의무지요. 그러나 유사법제 3개 법안은 단순히 지키기만 하자는 게 아니어서 문제예요. 일본이 지금까지 슬금슬금 군사력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에요. 일본 군대인 자위대는 유엔평화유지군(PKF)이란 이름 아래 동티모르 등 해외 분쟁지역에서 지원활동도 하고 있지요.

일본은 미국과 안전보장조약을 맺고 있는데, 전쟁 중인 미군의 후방에서 자위대가 물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주변사태법·테러대책특별조치법도 이미 마련돼 있어요. 현재 자위대는 태평양전쟁 후 처음으로 인도양에 진출해 있답니다.

그러나 유사법제는 지금까지의 움직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유엔평화유지군은 국제사회가 인정한 군사활동이지요. 주변사태법 등도 '미군지원'이란 제한선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사법제가 만들어지면 제한이 거의 없어져요. 총리가 '위기상황'이라고 규정하면 바로 전시체제에 들어가는데, 이 '위기상황'이라는 것이 너무 범위가 넓답니다. 일본이 '직접 무력침공을 받았을 때'뿐만 아니라 '받을 가능성'이 있을 경우도 포함되거든요.

1990년대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적이 있지요. 이런 경우도 해당돼요. 직접 공격당하지 않더라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만으로도 전쟁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자위대도 무기를 현재보다 훨씬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답니다.

또 자위대가 전시체제에 들어가면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따라 주일미군도 동참할 가능성이 크지요. 반대로 미군이 전쟁을 할 때 일본이 '위기상황'이라고 규정하고 자위대가 동참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이것은 평화헌법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헌법은 일본이 직접 무력공격을 받지 않는 한 '자위대와 미군이 함께 전투하는 것'(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하고 있거든요.

일 본 시민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유사법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일 날이 없어요. 한마디로 '일본을 다시 전쟁으로 몰아넣지 말라'는 것이지요. 일본변호사협회 등 지식인층 다수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사가 최근 성인 남녀 1천54명의 의견을 물었는데 81%가 부정적이었고, 찬성은 6%에 불과했어요.

유사법제가 만들어지면 '위기상황'때는 공공기관 직원이나 의사·간호사 등 전쟁에 필요한 사람들이 동원됩니다. 주유소·식품점 등은 전쟁물자를 제공해야 하고요. 군대가 민간인의 토지를 마음대로 쓸 수도 있지요. 언론보도도 통제받을 가능성이 커요. 거부하는 사람들은 처벌받게 된답니다. 많은 일본인들은 "태평양전쟁 당시의 전시동원령 같다"고 말합니다. 냉전시대도 끝난 마당에 왜 일본이 굳이 나서서 '전쟁준비법'을 만드느냐는 지적도 많아요.

그 런데 왜 일본 정부는 굳이 유사법제를 만들려고 하지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77년부터 유사법제 연구가 시작됐지요. 그러나 평화를 원하는 많은 국민의 반대로 본격화하진 못했어요. 그러다 지난해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것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총리에게 힘을 실어줬어요.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희망해온 정치인이에요. 부시 대통령도 이를 지지하고 있지요. 미국에서 9·11 테러가 터지자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을 돕는다면서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을 만든 후 내친 김에 유사법제 3개 법안까지 만들겠다고 나선 거예요.

앞 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유사법제 법안은 일본의 정기국회가 끝나는 이달 19일까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폐기되거나 내년 정기국회로 넘겨지게 됩니다. 야당은 법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하지만 자민당은 이번에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국회 일정을 40일 정도 연장하자고 주장하고 있지요. 17일께 회기 연장 여부가 결정될 예정입니다.그러나 이번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 해도 불씨가 꺼지는 건 아닙니다.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유사법제 주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합니다.

일본 국내가 유사(有事)법제 3개 법안을 둘러싸고 시끌시끌합니다. 일본 정부와 여당인 자민당이 이 법안을 사상 처음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는데, 야당과 많은 시민단체는 거세게 반대하고 있어요. 한국·중국 등 주변국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요. 법이 통과되면 동북아시아 안보질서에 큰 변화가 오거든요. 유사법제가 도대체 뭐기에 이렇게 시끄러운지 내용·의미·전망 등을 알아봅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