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 기술은 초일류, 특허 출원 지원은 최하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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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사례를 통해 본 국내 특허지원 실태는 한마디로 세계적인 발명기술을 뒷받침하기엔 턱없이 뒤처진 후진국 수준이었다.

세계를 놀라게 한 황 교수의 '인간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기술'이 불과 수억원의 비용이 없어 국제특허출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는 ▶특허 지원비를 확보하기 어려운 국내 기초과학 연구계의 열악한 환경과 ▶특허 문제와 관련한 정부의 정책적 인식 부족 등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엄청난 부가가치 창출이 예상되는 황 교수의 연구 결과도 이 정도이니 다른 기술들은 어떻게 사장되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가성 있는 제안은 많지만…"=황 교수는 "'특허 관련 절차나 비용은 모두 책임질 테니 연구에만 몰두하라'는 국내외 로펌이나 벤처기업은 많지만 한결같이 대가성이 분명해 함부로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특허권이 대한민국 정부에 있는 그 기술을 개인 기업들의 영리에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 황 교수의 입장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자금을 지원해 주겠다고 나서는 개인 독지가도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다. 황 교수는 "현 시스템 아래서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크게 알리지도 않았다"고 했다. 황 교수와 줄기세포 연구에 함께 참여했던 다른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요즘 황 교수에게만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이 몰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상태에서 그가 특허비 문제까지 먼저 언급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안은 국내 생명공학 연구자들의 어려운 여건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정부도 가시적 결과에 급급=황 교수의 이번 연구는 황 교수가 뜻을 같이한 다른 연구자들과 개인적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다.

'21세기 프론티어사업' 같은 국책과제로 시작된 게 아니었다. 이 때문에 지난 2월 성공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정부로부터 한푼의 지원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황 교수팀은 연구비(1억원가량) 조달에도 바빴다. 성공 이후 국제특허출원 등의 문제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정부 지원 프로젝트는 예산 신청시 연구자가 특허 관련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성공 여부가 불확실하거나 당장 실용화가 힘든 기초과학 연구자들은 필요한 만큼 충분한 지원금을 신청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허청의 이윤원 심사조정과장은 "기술개발 후 실제로 이윤 창출까지 대개 10년 가까이 걸리는 생명공학 분야에선 황 교수와 같은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면서 "더군다나 지금까지 그런 원천기술이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대책은 전혀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안에서도 그렇게 장기적 관점에서 특허 문제를 보는 인식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선진국에선=미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들은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특허지원담당기관을 만들어 기술개발단계에서 선행기술이나 경제적 효율성을 면밀히 검토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특허출원에서 관리에 이르는 모든 비용을 전액 부담하거나 보조해 주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80년 이후 각 대학에 기술이전센터(TLO)를 설립, 연구자가 계획안을 제출하면 우선 특허 관련 기술적.행정적 검토를 해주고 연구 결과가 나온 뒤에는 출원.관리절차와 비용을 전담해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1990년 이후 미국의 신경제는 이러한 국가적 차원의 특허기술 지원체제 아래서 원동력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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