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제2부 薔薇戰爭제4장 捲土重來:들쥐에겐 들쥐가 배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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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그리고나서 김양은 말을 덧붙였다.

"일찍이 당나라의 위고(韋固)가 달빛 아래에서 이인을 만나 그가 가지고 있는 주머니속의 붉은 끈을 물으니 이것으로 남녀의 발목을 묶으면 비록 원수의 집안 사이라도 혼인이 이루어진다 하여서 적승계족이라 하였나이다. 하물며 원수의 집안이라도 그러할진대 대사 나으리와 아찬 나으리의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을 것이겠나이까."

장보고는 김양의 말을 받아들였다. 김우징이 보낸 용봉예서를 받아들임으로써 청혼을 허락한 것이었다. 이로써 김우징의 아들 경응과 장보고의 딸 의영과는 혼사가 성립된 것이었다. 즉 김양의 표현대로 양가는 붉은 끈으로 발목을 묶음으로써 혈연지문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혼인 날짜는 물론 김명을 죽이고, 임금과 애비의 원수를 갚은 이후라고 못박음으로써 김양 또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이로써."

어렵게 장보고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서 김양은 쾌재를 부르며 말하였다.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이제 김명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한식경에 불과하다."

한편 남편으로부터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은 장보고의 부인 박씨는 크게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다.

"어찌하여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혼서를 받아들이셨나이까."

"나는 내 딸 의영이가 앙혼으로 지체 높은 귀족의 가문으로 시집가는 것을 보고 싶소이다. 또한 이제 군사들이 신라의 조정으로 쳐들어가 환란을 평정하게 된다면 아찬 나으리는 인군의 자리에 오를 것이고, 그의 아들 경응은 세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 아닐 것이오. 그렇게 되면 내 딸 의영은 세자비가 될 것이외다."

그러자 장보고의 부인 박씨가 이렇게 말을 하였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한 들쥐가 있었는데 자식을 위하여 높은 혼처자리를 구하려 하였습니다. 들쥐는 처음에는 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다 생각하여 하늘에게 혼처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비록 만물을 다 포용하고 있지만 해와 달이 아니라면 내 덕을 드러낼 수 없단다.' 그 말을 들은 들쥐는 곧 해와 달에게 혼처를 구했습니다. 그러자 해와 달은 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비록 넓게 비추기는 하지만 구름만은 나를 가릴 수 있다. 그러니 구름이 내 위에 있지.' 그래서 이번에는 구름에게 가서 청하였습니다. 그러자 구름은 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비록 해와 달의 빛을 잃어버리게 할 수는 있지만 바람이 분다면 흩어지고 만다. 그러니 그가 내 위에 있지.' 이 말을 들은 들쥐는 다시 바람에게 갔습니다. 바람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구름을 흩어버릴 수 있지만 오직 밭 한 가운데 있는 돌부처는 불어도 끄덕하지 않으니 그가 내 위에 있단다.' 할 수 없이 들쥐는 돌부처에게 청하자 돌부처는 말했습니다. '나는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들쥐가 내 발밑을 뚫으면 나는 쓰러지고 만다. 그러니 그가 내 위에 있다.' 이 말을 들은 들쥐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였습니다. '세상에 존귀하기는 우리만 한 게 없구먼.'"

조용조용하게 말을 마치고나서 박씨는 남편 장보고를 쳐다보고 말하였다.

"그리고 나서 들쥐는 마침내 들쥐와 혼인을 하였나이다. 나으리, 이처럼 들쥐에게는 들쥐가 가장 좋은 배필인 것이나이다. 들쥐가 해와 달과 결혼한다한들 들쥐가 해와 달이 될 것이나이까, 들쥐가 돌부처와 혼인한다한들 들쥐가 돌부처가 될 것이나이까."

"하오면 의영이가 들쥐라는 소리요."

다소 언짢은 목소리로 장보고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박씨부인는 물러서지 않고 말하였다.

"옛말에 이르기를 야서지혼(野鼠之婚)이라 하였습니다. '들쥐의 혼인'이란 뜻으로 들쥐에게는 들쥐가 가장 좋은 배필이란 소리입니다. 나으리, 저들은 저희 같은 천민들은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귀인들로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아니하는 해와 달, 구름과 바람 같은 사람들일 뿐이나이다. 나으리, 지금이라고 늦지 않으니 그 용봉예서를 돌려 보내시옵고 양가의 발을 묶은 붉은 끈을 풀어 버리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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