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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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인 김수영은 비슷한 연배의 시인 박인환을 꽤나 싫어했다. 박인환이 요절한 지 10년 후(1966년)에 쓴 산문 '박인환'에서도 "나는 인환을 가장 경멸한 사람의 한 사람이었다. 그처럼 경박하고 값싼 유행의 숭배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었을 때도 장례식에 일부러 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김수영이 저항시인으로 우뚝 섰다면 '세월이 가면'의 박인환 역시 영역을 달리한 곳에서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서로 열등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음직한 두 시인이 수시로 만나 토론하던 공간이 서울 종로의 서점 마리서사(茉莉書肆)였다.

'마리'라는 상호는 프랑스의 화가 겸 시인 마리 로랑생에게서 따왔다고도 하고, 일본시인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의 시집 『군칸마리(軍艦茉莉)』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박인환은 해방후 파고다공원 부근에 이 서점을 차려 2년반 가량 운영했다.

'돈안되는' 서점을 굳이 차려 문인들의 사랑방으로 제공했던 박인환은 책을 셀로판지로 싸서 갖고 다닐 정도로 애서가였다.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을 숭상하던 조상들의 표표한 정신세계가 후대 문인들에게 이어진 덕분이 아닐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만 해도 자신이 귀양살이할 때 중국의 귀한 책들을 구해 보내준 제자 이상적에 대한 보답으로 그린 작품이었다. 그만큼 우리 전통에서 책은 책 이상의 존재였고, 서점은 서점 이상의 공간이었다.

95년 역사를 자랑하던 서울의 종로서적이 끝내 부도를 맞았다는 소식은 가슴 한구석을 허전하게 만든다. 한시대를 풍미하던 책방이 어쩌다 문닫을 위기에 몰렸는지 안쓰럽다. 옛날 장무구라는 독서가는 귀양지에서 등잔기름이 없어 밤에는 책을 보지 못하다 먼동이 트자마자 창으로 가 새벽빛의 도움으로 14년간이나 책을 읽었다. 덕분에 창 아래 돌바닥에 뒤꿈치 자국이 났다는 것이다(『책읽는 소리』·정민). 종로서적 역시 손님들의 발길로 3층까지의 대리석 계단이 2㎝나 파였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인터넷 서점이 편리하다지만 내 손으로 직접 책을 살피고 고르는 책방 고유의 즐거움은 도저히 흉내내지 못한다. 마침 오늘부터 '서울 국제도서전'도 열린다니 나서보면 어떨까. 월드컵 시청은 한두 게임 정도 포기하고.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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