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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입만 열면 "16강… 16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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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경기장에서 2대0 이라는 스코어가 아닌 온 국민의 화합을 봤다."(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회원 윤월)

월드컵 첫 승리의 신드롬이 계속되고 있다.

간밤의 감동이 5일 이웃·동료간 화합 분위기로 나타나면서 국민단합을 호소하는 인터넷 메시지도 주요 사이트마다 수백개씩 오르고 있다. 반면 이런 분위기에 취한 직장 내 근무기강의 해이 또는 산업현장의 생산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계속되는 열기=직장이나 학교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5일 곳곳에서 활기와 자부심이 감지됐다. 경영악화로 고전 중인 벤처기업 메디슨의 유병선(27)대리는 "승전보가 사람들의 표정을 확 바꿨다"면서 "그간 왕래가 뜸했던 다른 부서 직원들과 오늘 저녁 동반회식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소프트웨어업체 직원 김민수(27)씨는 "직장동료 10여명과 경기를 보고 새벽까지 술을 마시느라 출근이 늦었지만 업무 능률은 더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도 일산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은 5일 입주자대표회의를 열어 오는 30일 월드컵 결승전 때까지 매일 태극기를 달기로 했다. 입주자대표협의회 총회장인 채수천(蔡壽天·58)씨는 "48년 만의 첫승을 축하하고 계속 선전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했다. 단지별로 방송과 벽보를 통해 이같은 내용이 전파되면서 주엽동 강선마을 7단지, 삼환·유원 아파트 등 3백여가구가 태극기를 내걸어 마치 국경일 분위기를 연출했다. 배재대(대전) 등 상당수 대학들은 한국과 미국이 격돌할 오는 10일 오후 3시 이후 수업을 휴강키로 했다.

◇직장들은 부심=에어컨 생산업체인 광주 C사는 한국팀 경기가 있는 날 회사에서 TV중계를 시청하는 대신 지방선거일인 13일 특별근무를 하기로 노사가 합의했다. 회사 관계자는 "월드컵 분위기도 살리고 밀린 주문에 대처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노사 모두 절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경남 거제 대우조선·삼성중공업 협력업체들은 근로자들이 월드컵 TV 시청을 위해 잔업을 기피하는 바람에 일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거제시 연초면 H기업측은 "오후 6시부터의 잔업엔 평소 근로자 대부분이 참여했으나 월드컵 개막 후에는 50% 정도만 일해 납품시기를 놓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미국전이 열리는 10일에는 아예 연월차를 내고 출근하지 않겠다는 근로자들이 많아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라파즈 한라시멘트는 매일 아침 실시하는 안전교육을 최근 대폭 강화했다. 밤늦게까지 잠을 설쳐가며 경기를 시청하느라 자칫 안전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러움 산 열기=4일 밤 수만명의 길거리 응원단이 머문 자리를 청소한 종로구청 청소과 이상호(51)작업팀장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한곳에 모아준 덕에 새벽 4시쯤 말끔히 작업을 끝냈다"며 "자발적으로 봉투를 들고 다니며 청소를 도운 젊은이도 많았다"고 대견해 했다.

이런 모습은 외국인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광장에서 경기 장면을 본 이란인 라민 살레히아드(22)는 "경기장 안팎에서 그렇게 일사불란한 응원 물결은 처음 봤다"며 "합심해 응원하는 한국 사람들의 기세에 놀라지 않을 외국인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부·전국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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