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종로서적 부도 사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30대 이상에게는 '약속의 장소'로 추억이 어린 서울 종로서적이 4일 최종부도 처리됐다. 이날 낮 셔터가 내려진 종로서적 입구엔 책이라도 건져보려고 몰려든 1백여명의 출판사 영업 관계자들만이 웅성대고 있었다. 95년 역사의 장소가 허물어지는 모습이었다.

종로서적의 최종부도는 사실 '예고된 몰락'이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여파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한기호 소장은 "최근 신문·방송을 통해 시작된 책읽기 바람 덕분에 매출액이 늘어나 겨우 버텨왔지만 지난해 말부터 부도설이 끊임없이 나돌았다"면서 "웬만한 출판사들은 거래를 줄이거나 정지하는 등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로서적의 몰락은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1980년대부터 강성노조와 경영진, 창업자 가족간의 내부갈등 등에 시달리면서 적극적인 개혁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또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던 70년대 전성기 때의 모습에 연연해 주차장이 없는 등의 문제에 안일하게 대처한 것도 소비자들을 멀어지게 한 요인이었다. 더욱이 인터넷 서점과 다른 대형서점들의 할인 공세가 가열되면서 경영난은 심각해졌다. 결국 출판사들에 밀린 도서대금과 체불 임금·퇴직금 등 총 50여억원을 갚지 못한 것이다.

도서출판 푸른숲의 김혜경 사장은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다양한 구색과 문화 1번지로서의 이미지 등을 토대로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변신했다면 좋았을텐데, 출판인의 입장을 떠나 동시대인으로서 섭섭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로서적의 부도소식에 아쉬움을 느끼는 이가 어디 출판 관계자들뿐일까.

종로서적의 역사는 1907년 예수교서회가 현재 위치의 목조기와집에 기독교서점을 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문서관·종로서관 시대를 거쳐 63년 종로서적센터로 이름을 바꾸면서 서울의 대표 서점으로 자리잡았다. 60~70년대 젊은이들에게 유일한 지성의 공간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람들의 잦은 발길에 눌려 3층까지의 대리석 계단 모두가 접시바닥처럼 2㎝ 움푹 파였다는 전설 아닌 전설까지 생겼다.

하지만 한창 때 하루 4만명이 찾던 이 곳은 80년대 이후 인근에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이 들어서면서 손님이 크게 줄었다. 이에 따라 교보·영풍문고 등에 앞서 인터넷 사이트를 처음 만드는 등 '젊어지려는' 시도도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지속적으로 힘을 내지 못했다.

지역서점들의 '대장'격이었던 종로서적의 부도는 우리나라 서점계의 위기가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97년 말 5천4백7개에 달하던 서점은 지난해 말로 2천6백96개로 줄어들었다. 나머지 서점들에 이번 소식은 적지 않은 정신적 타격이 될 것이다. 종로서적측은 무조건적인 3자 인수를 통해서라도 서점을 살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나 워낙 구조적인 문제가 커서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