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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의 첫승 주역-'황새'가 낚아채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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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황새의 비상(飛上)은 우아했다.

그의 이번 월드컵 첫골은 그가 축구를 시작한 이래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에서 넣은 50번째 골이었고, 한국 축구의 50년 염원인 월드컵 첫 승을 알리는 축포였다. 황선홍(34·가시와 레이솔). 그가 해냈다.

그는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단연 두각을 나타내며 차범근-최순호의 대를 이을 국가대표 최고의 공격수로 발돋움했지만 정작 중요한 월드컵과는 좋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처음 나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그는 볼리비아와의 경기에 출전했으나 평소의 그답지 않은 실망스러운 플레이로 여러 차례 득점 찬스를 모두 놓쳤고 이길 수 있던 경기를 무승부로 끝내고 말았다.

그후론 자신이 한국의 16강 진출 기회를 날려버렸다는 부담 속에 살아야만 했다. 절치부심하며 4년을 기다린 그는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지난 대회의 부진을 멋지게 씻어버리고 싶었지만 월드컵 본선을 불과 일주일여 남기고 가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부상하고 말았다. 그는 대회 내내 벤치에 앉아 가슴을 쳐야 했다.

결국 선수로서 맞는 월드컵은 끝이 나는 듯했다. 그러던 그에게, 서른네살의 나이인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히딩크 감독은 부임 후 1년여 '킬러 본능'을 가진 선수를 애타게 찾았고 적임자가 바로 그였던 것이다.

한국팀의 최근 상승세에 불꽃을 지핀 것도 그였다. 올들어 미주 전지훈련 등을 거치며 침체했던 대표팀은 지난 3월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핀란드와 만났다. 유럽의 강팀인 핀란드와 또다시 무기력한 경기를 할 경우 불과 3개월 남은 월드컵 대회는 먹구름으로 가득차게 될 판이었다. 경기 종료가 임박한 시점에서 그는 극심한 골가뭄에 시달리던 대표팀에 그림같은 골을 두개나 선사했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 축구를 건져낸 골이었다.

이후 한국은 강호들과의 평가전에서 승승장구하며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한국에 첫승을 선사한 이날 골은 왜 히딩크 감독이 언제나 그를 스트라이커 1순위에 올려놓는지를 알게 하는 작품이었다.

문전에서 공을 잡으면 더욱 침착해지는 그이기에 총알같이 날아드는 이을용의 낮게 깔리는 패스를 논스톱으로 살짝 방향만 바꿔 골네트에 꽂아넣을 수 있었다. 황선홍은 이날 첫골을 따낸 이후에도 후반 4분 교체되기 전까지 상대 수비를 달고 다니면서 여러 차례 설기현과 박지성 등에게 좋은 찬스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남은 미국·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도 힘차게 날아올라 한국에 16강을 선물하고, 그리고 멋지게 작별인사를 해주기를 기대해본다.

부산=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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