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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통화 ‘운영’위원회로 되돌아가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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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렇게 축소된 금통위의 권한은 97년 말 한은법 6차 개정으로 되찾았다. 금통위란 이름이 부활됐고, 금통위원도 전원 상근 체제로 바뀌었다. 금통위원 추천권 일부도 민간(상공회의소·은행연합회 등)에 주었다. 민관(民官)을 대표하는 인사들로 금통위를 구성해 독립적인 통화신용 정책을 꾸리자는 뜻이었다.

이런 역사의 금통위, 요즘 흔들리는 것 같다. 어렵게 제자리를 찾은 금통위가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 뒷걸음질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지난 4월에 한 금통위원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는데도 아직 후임자가 임명되지 않았다. 6인 금통위원으로 정례회의를 두 차례나 했다. 이번 주 금요일(9일)에도 회의가 열린다. 새 금통위원은 상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하지만 상의는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다. 추천권은 형식일 뿐이다.

금통위원은 기준금리를 올릴지, 내릴지를 표결로 정한다. 3대3으로 의견이 맞서면 의장인 한은 총재가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결론을 낸다. 그런데 지금처럼 6인 금통위원 체제에서는 3대3이 되면 ‘부결’이다. 지금은 출구전략을 놓고 갑론을박이 뜨거운 민감한 때다. 금통위원 한 자리는 통화신용정책 방향을 틀 수 있는 중요한 자리다.

청와대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을 게다. 그런데도 뒷짐 지고 있는 건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뜻과 다른 결정을 금통위가 할 리 없다는 믿음이다. 이러니 시장은 금통위보다는 청와대나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에 더 민감하다. 금통위가 금통운영위 수준이 됐다는 비아냥은 그래서 나온다. 더욱이 빈자리를 국회의원 재·보선 이후의 논공행상(論功行賞)이나 관료들의 인사 적체 해소용으로 쓰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니 더 그렇다는 말이다.

1945년 해방된 대한민국은 중앙은행법을 자체적으로 만들 능력이 없어 뉴욕연방준비은행에 전문가 파견을 요청했다. 49년 9월 한국에 온 아서 블룸필드 박사는 5개월간 연구 끝에 금융·통화·외환 정책을 정부에서 독립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가져야 한다는 블룸필드 보고서(중앙은행 개편에 관한 건의안)를 제출했다. 그러자 보고서는 국가의 기본적 계획과 정책 수립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한 ‘헌법’에 어긋난다며 격론이 일었다. 그럼에도, 제정된 한은법은 블룸필드 보고서의 골격을 유지했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중앙은행의 독립이란 시곗바늘이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