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용] 고통을 벗는 첫 걸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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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라마 수리야 다스 지음, 진우기 옮김
푸른숲, 286쪽, 9800원

“고통과 불행이 밀려올 때는 웃어 보아라. 어떤 식으로든 웃어라. 시시하게 대충 웃지 말고 우주와 함께 껄껄 웃어라. 짐을 내려놓고 가벼워져라. 그리고 깨어나라.” 만약 ‘상실’때문에 마음이 얼음장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무릎 삼으면 어떨까.

청안청락(淸安淸樂)하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꽃살문 같은 삶은 없을까. 하지만 맑고 투명한 빛이 우리 마음에 머물기는 쉽지 않다. 부처는 ‘상실’을 우리 삶의 일부라고 가르친 성자다. 인간의 삶을 ‘고통의 바다’라고도 했다. 상실의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희망을 흔들어버리는 가장 위험한 뿌리이자 소소한 개인에 불과했던 ‘나’를 더 큰 우주로 나아가게 하는 무한한 에너지의 실체이기도 한 것이 ‘상실’이라는 감정이다. 그만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실감에 휩싸인 사람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것은 쉬운 일이 못된다.

티베트불교 수행자 라마 수리야 다스의 『상실』은 불교적 관점에서 상실의 감정을 조근조근 매듭을 풀 듯 풀어낸다. 이 책은 문장이 어렵지 않고 우선 숨결처럼 따뜻해 뒷맛이 맑다.

라마 수리야 다스는 상실에 직면했을 때 눈앞의 상실을 충분히 슬퍼하라고 말한다. 흐르는 눈물과 불행한 마음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느껴지는 대로 느끼고 받아들여지는대로 받아들이되 위축되지 말고 상실에 대한 명료한 시각을 가질 것을 권한다. 상실을 회복과 희망으로 전환하는 첫걸음은 자신이 겪은 것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껏 아파하고 마음껏 노여워하고, 그 다음엔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이 치료법은 매우 티베트 불교적이다. 과거에 매달리지도 말고 미래에 대한 환상을 만들지도 말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른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마음 챙김’ 같은 것이다. 『임제록』에 나오는 ‘즉시현금 갱무시절 (卽時現金 更無時節: 바로 지금이지 다시 시절이 없다)’과도 맥이 통한다.

라마 수리야 다스는 ‘놓아버림’의 수행을 적극 권한다. 우리가 가장 집착하는 것을 신발을 벗듯 잠시 놓아 보라고 말한다. 가볍고 사랑스러운 손길로 어제의 ‘나’를 떠나보내야만 내일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과 상실이 들이닥쳤을 때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하고 생각하면 우리가 훨씬 자유로워질 텐데, 사람의 마음이 한 순간에도 백 리에 치닿고 요상한 나찰 같아서 그렇지 못하다.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상실을 빨리 극복할 수 있을텐데 그게 쉽지 않다. 라마 수리야 다스는 ‘무상하다’는 것을 제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마치 새들이 밤에 한 나무에 깃들였다가 새벽이 되면 사방으로 흩어지는 그런 도리를 그는 말하는 것 같다. 당신도 나도 공기마저도 순간순간 변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놓아버림’도 쉬울법 한데 말이다.

상실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귀한 약이 될 것 같다. 상실이 유행하고 있고 또 상실이 장기불황처럼 오래 우리 삶에 정박할 거라고 한다. 그럴수록 이 책은 독자들의 젖은 베갯잇 곁에 오래 있게 될 것을 예감한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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