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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할머니의 아름다운 선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강원도 속초에 사는 서정순(71)할머니는 늘 뛰어다닌다. 언제 돌발상황이 생길지 몰라 옷을 입고 양말을 신은 채 잠을 잔다. 신발을 제대로 신을 시간조차 아까워 늘 뒤축을 꺾고 다닌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고 하소연하는 이 할머니. 도대체 뭐가 그리 바쁜 것일까.

3일부터 방송되는 KBS '인간극장' 4부작 '욕쟁이 할머니'(밤 7시55분·사진)편은 일흔을 넘긴 나이에 젊은이들보다 더 바쁘게 사는 서씨의 일상으로 들어갔다. 자식들을 외지로 떠나보내고 혼자 사는 서씨는 18년전부터 독거 노인 20여명을 돌보고 있다.

# 할머니는 각설이=그녀는 제법 번듯한 쌈밥집을 운영하고 있다.'나홀로 노인'들의 반찬을 손쉽게 조달하기 위해 문을 연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 경기가 나빠지자 시장을 돌아다니며 하루 지난 채소를 주워다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다. 피서철이 아니라 손님은 별로 없지만 얻어온 채소를 다듬고 데치느라 종일 바쁘다.

# 할머니는 욕쟁이=할머니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다. 반찬거리나 자투리 옷감을 거저 얻거나 관공서에 차편을 무료로 요청하면서도 비굴하지 않다. 오히려 일을 맘에 들게 하지 않으면 심한 욕설을 퍼붓는다. 전날 팔고 남은 채소를 걷어가기 위해 시장통에 나와도 마찬가지다. 할머니는 산더미처럼 쌓인 채소의 주인 격인 상인들에게 가게까지 배달을 부탁한다. 간혹 상인들이 투덜대면 바로 욕을 쏟아낸다.

#할머니는 멕가이버=할머니 손은 멕가이버 손이다. 시들시들한 채소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깔끔하고 정갈한 반찬으로 변신한다. 자투리 옷감으로도 수십벌의 '몸뻬'를 뚝딱 만들어낸다. 여기저기서 조달한 재료로 2천여명을 위한 노인잔치를 어렵잖게 치렀다. 맘에 들지 않으면 버럭 화를 내는 무서운 할머니지만 마음만은 비단결이다. 서할머니는 촬영 내내 "물심양면으로 뒤에서 돕는 사람들이 진짜고 나는 심부름꾼일 뿐"이라 했다고 한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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