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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선임 갈등 배경] 정부는 언론개혁 차질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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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사장 임명권을 가진 문화관광부와 다시 한국언론재단 이사장에 선임된 박기정 현 이사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문화부가 '외압 시비'에도 불구하고 박 이사장의 연임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고, 박 이사장도 현재로선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언론계에선 왜 문화부가 강경하게 나오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있다.

◆ '민주적 절차'인가 '연임 욕심'인가=한 언론재단 실무자는 24일 "이사회가 열리기 전 문화부로부터 서동구 전 KBS 사장이 이사장에 내정돼 있으니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이렇게 서 전 사장이 이사장에 쉽게 오르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문화부 고위관계자도 이날 "(사전에) 박 이사장이 협조하겠다고 말해 순조롭게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23일 이사회에선 일부 이사들이 표 대결을 주장하고 나섰다. 여기서부터 문화부의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서 전 KBS 사장을 제치고 박기정 현 이사장이 재선임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 일부 이사들은 "박 이사장이 연임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었다"며 "청와대.문화부가 이사장 선임을 둘러싸고 미숙하게 대응한 결과"라고 말했다. '권력의 힘'만 믿고 사전 정지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언론재단 개편 등 차질 가능성=일각에선 청와대.문화부가 박 이사장의 연임에 지나치게 강경할 정도로 나오는 건 정부의 '언론개혁'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10월 국회에 제출한 신문법에서 언론재단을 '언론진흥원'으로 개편해 이른바 '언론개혁'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박 이사장이 연임하면 이 같은 계획을 추진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그는 여러 차례 "중립적인 입장에서 언론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혀 왔다.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일부 신문에 불이익을 주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 어떻게 전개될까=박 이사장은 이날 기자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정부가 상호 윈-윈을 생각해야지 강압적으로 몰아가면 곤란하다"며 "주말 동안 고민한 후 다음주 초에 거취를 결정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시간을 갖고 해결방안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청와대.문화부는 자진사퇴가 아닐 경우 임명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

언론계는 청와대.문화부.박 이사장이 첨예한 갈등 상황에서 어떤 해법을 찾을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에 따라 현 정부의 언론계 인사와 언론정책의 큰 그림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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