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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한국 경기 때 애국가 들으며 가슴 뭉클했어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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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호 20면

30년 혹은 50년, 수십 년간 품어 온 국적을 버리고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들이 있다. 귀화(歸化) 한국인. 2010년 6월 현재 9만6461명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을 새로운 조국으로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다. 과학 연구를 맘껏 할 수 있어서, 산과 강이 좋아서, 남편의 조국이어서…. 하지만 이들의 꿈은 하나로 모아진다. “한국 땅에서 나의 꿈을 펼쳐 보겠다”는 것이다. 3D(3차원) 영상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블라디미르 사베리예프(56·러시아 출신) 교수. 자신과 같은 결혼 이주민 가족의 행복을 위해 밀알이 되겠다는 ‘몽골댁’ 이라(33) 의원. 로봇 태권브이 프로젝트에 꼭 참여하겠다는 로봇 과학자 김무림(34) 박사. 주민등록증을 받은 지 2년 차, 3년 차에 접어든 3인의 한국 생활을 들어봤다.

대한민국 귀화한 3인의 3색 이야기

러시아 출신 사베리예프 한양대 교수
“3D영상 연구 환경은 한국이 최고 아내는 귀화 안 해 외국인과 사는 셈”

“사람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면 신기해하죠. 근데 얼굴은 변하지 않으니 결국은 외국인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회색 머리칼과 깊고 부드러운 눈. 영화 ‘해리 포터’의 마법학교 교장 ‘덤블도어’를 연상시키는 사베리예프 한양대 교수는 “11년 전 꼭 이맘때였다. 학회 참석차 한국에 왔을 적에 거리에 핀 꽃과 나무의 아름다움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때가 새삼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출신의 응용수학자다. 세계적 인명사전인 마르퀴스 후즈후 2009·2010년 판에 등재된 3D 영상 디스플레이 부문의 손꼽히는 권위자다. 2000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의 연구과학자 자격으로 한국에 온 이후 10년째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한양대 전기정보통신기술연구소 연구교수로 일한다. 2008년 10월 한국인이 됐다.

“3D 영상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한국의 연구 환경이 최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귀화한 가장 큰 이유였죠. 또 한 가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한국에서 찾은 겁니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KIST 시절 동료 연구원을 따라 청계산 정토사에 다녀온 뒤 불교에 귀의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절을 찾는다. “삶의 본질에 대한 탐구, 깨우침이 있는 불교적 종교관이 내게 맞습니다. 한국에서 나의 정신 세계는 아주 편안합니다.”경기도 광주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베리예프 교수의 부인은 러시아 국적을 갖고 있다. “2008년 내가 귀화 시험을 보면서 너무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본 아내는 지레 포기했어요. 나는 외국인 부인과 살고 있는 셈이죠.” 한국어 시험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두 번이나 떨어졌다. “당시 정토사 한보광 주지 스님 등 여러분이 큰 도움을 주셨어요.” 독일과 헝가리, 호주 등에서 살고 있는 4명의 장성한 자녀는 아버지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축하해 줬다고 한다.

사베리예프 교수는 한국의 자연에 흠뻑 취해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산과 강을 여행하는 것”이 한국 생활의 최대 매력 포인트라고 한다. 그는 설악산과 겨울날 강릉의 쪽빛 바다를 첫손에 꼽았다. 서해안 만리포의 바다 안개는 여름에 볼 만하다고 기자에게 추천해 주기도 했다.사베리예프 교수는 가방에서 2007년 중앙서울마라톤 참가 증명서를 꺼내 보였다. ‘남자 50대 부문, 761명 중 144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마라톤은 한국에 온 뒤 만끽하는 큰 기쁨 중 하나. “수많은 사람이 한 목적지를 향해 열정을 갖고 달리는 분위기가 너무나 좋습니다.” 올가을 중앙서울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내년에 한국이 이중 국적을 허용하면 사베리예프 교수는 러시아 국적을 회복할까. 그의 답은 간단했다. “왜 하죠?” 사베리예프 교수는 아직 한국말을 잘 하진 못하고 발음도 부정확하다. 귀화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쪽지를 내밀었다. 직장 동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양대 제2공과대학장인 권오경 교수와 융합전자공학부장인 김회율 교수. “연구 활동 등 모든 면에서 도와주는 그 두 분에게 감사의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몽골 출신 이라 경기도의회 의원
“초등생 아들 교육 때문에 귀화 결혼 이민자에 대한 시선 바뀌었으면”

경기도 의회의 이라(33) 의원은 2003년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으로 온 ‘몽골댁’이다. 2008년 10월 한국 국적 취득과 함께 성남 이(李)씨를 창시한 그는 지난달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거뜬하게 당선됐다. 1호 다문화 출신 정치인이다. “다문화 가족들, 결혼 이민자들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겠지요. 어깨가 무겁습니다.”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결혼 이민자 네트워크 부회장으로, 성남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봉사자로 바쁘게 지낸 이 의원은 1일 도의원 일까지 시작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1일 경기도 수원시 도교육청에서 열린 교육감 취임식 행사장 한쪽에서 그를 만났다. 한국 생활 7년 차. 그의 한국어 실력은 기자보다 더 나은 듯했다. “첨에 제의가 왔을 때 남편과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어요. 다문화 가족들도 힘을 얻었다며 기뻐했고요.”

이라 의원은 2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14) 때문에 귀화 신청을 적극적으로 했다고 한다. 학부모가 제출할 서류 한 장 떼기가 불편했고 남편 없이는 아이의 여권도 만들어 줄 수 없었다. 인터넷 가입, 은행 업무도 마찬가지였다.이라 의원은 자신이 한국 생활에 적응하자 다른 결혼 이민자들을 위한 봉사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고충을 듣는 것도 그의 일이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어요. 캠페인도 많이 하고 정부나 지자체도 적극적이죠.” 하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한국인의 시선은 여전히 이들을 힘들게 한다고 한다. “사실, 아시아인이면 일본 출신을 제외하곤 대체로 낮춰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백인과 아시아인이 길을 물었을 때 시민들의 태도가 확연히 다른 게 TV에서도 나왔죠. 특히 결혼 이민자라고 하면 더 낮춰 봐요.”

결혼 이민자들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이의 교육. “엄마가 한국어를 먼저 깨친 뒤에 아이를 낳으면 좋겠죠. 근데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한국에 와서 1~2년이 되면 보통 임신을 하는데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무심코 자기 고국의 말을 하게 되는 거죠. 아이가 다섯 살이 돼도 한국말도, 엄마 나라 말도 못해요. 엄마 마음은 찢어집니다. 언어 발달이 늦으니 학교 생활도 어렵고요.”

이라 의원은 엄마와 아이에 대한 동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데 문제는 또 있다. “최근엔 지자체 다문화센터에서도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있어요. 하지만 결혼 이민자의 남편이나 시부모가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제 모임에서도 그런 사례 얘기가 나왔어요. 가족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혼 이민자의 삶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집니다.”

26세 때 한국에 온 이라 의원은 치열하게 자기 계발을 하며 지냈다. “한국 도착 후 서강대 어학원에서 유학생들처럼 한국말을 공부했어요. 그때 컴퓨터그래픽이 너무나 신기해 경기도 여성능력개발센터의 프로그램에 등록하려 했는데 귀화 전이라 자격이 안 됐어요. 그래서 성남시에 있는 신구대학 시각정보디자인학과에 등록했어요.” 그는 현재 2학년이다.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는 이라 의원은 디자인 공부를 마치면 사회복지도 공부할 계획이다. 결혼 이민자와 다문화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체계적인 봉사를 하기 위해서란다. 그는 “결혼 이민자들도 여력이 닿는 한 한국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후배 결혼 이민자들에게 말합니다. ‘자원봉사에 관심을 가져라.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에 얼마나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야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인정한다’고요.”

옌볜 출신 김무림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연구원
“한국의 매력, 정이 있어 어려움 극복 지난달 지방선거 때 처음 투표

“철강 공정의 자동화, 로봇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수십 년 뒤, 가능하다면 ‘로봇 태권브이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싶고요.”
포항산업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인 김무림(34) 박사. 어려서부터 만화 ‘트랜스포머’를 보며 로봇에 대한 꿈을 키워 온 그가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다. 조선족인 김 박사는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 과학기술대학 출신. 99년 포항공과대학(현 POSTECH)에 교환 학생으로 방한한 것을 계기로, 2002년 3월 KAIST 기계공학과 로봇제어연구실 석사 과정에 유학생으로 입학했다.

“입학한 해 신체검사에서 흉부에 신경성 종양이 발견됐어요. KAIST 의료상조회 이상종 선생님이 수술해야 한다고 하시고 의료비도 지원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으로 유학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의문입니다. 귀화 결심을 굳힌 한 배경이지요. 그리고 자동화 및 로봇 분야의 연구 환경이 훌륭했던 것도 귀화의 큰 이유입니다.”

김 박사는 같은 조선족으로 연세대 언어정보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던 아내(35)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다. 박사 학위를 받은 지 1년 뒤인 지난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귀화 후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그는 “귀화 전엔 힘들었던 인터넷 가입, 신용카드 개설이 쉬워졌다”고 했다. 단 올해부터 세금을 만만찮게 내는데 “그동안 외국인 기술자로 많은 세제 혜택을 받았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지방선거 때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그리고 월드컵 경기 전 애국가를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나의 내면도 이제 대한민국 국민으로 바뀌고 있다고 실감했습니다.”

한국 생활 8년째인 김 박사는 “동료애 덕분에 생활을 잘 해 나갈 수 있었다”며 “한국의 최고 매력을 ‘정’이라고 꼽았다. “중국에선 나이가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술을 드리며 경의를 표하지만, 한국은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술을 주는 문화여서 오해를 산 적이 있습니다.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식으로 강요하거나 쉽게 무례하다고 예단하는 점은 좀 아쉬워요.”

귀화할 때 법무부에서 시험 예정일자 며칠 전에 휴대전화 문자 알림까지 해 주는 것을 보고 “대한민국은 참 서비스 강국이구나” 하고 감동했다는 김씨는 이민 정책에 대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전문 인력들의 귀화 프로세스가 단축됐으면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고 있잖아요. 외국인들의 유입은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외국인과 내국인들이 잘 어울려 살아가며, 외국인들이 한국이 좋아 귀화하려는 마음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요. 특히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거액의 투자를 한다든가, 특수한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전문가 등에 대한 귀화 프로세스가 단축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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