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에 실망 안긴 KAIST 총장 선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AIST 총장 선출 작업이 마무리됐다. 2일 열린 이사회에서 서남표 현 총장이 과반수 이상 득표해 향후 4년간 KAIST를 다시 한번 진두지휘하게 된 것이다. 비록 연임엔 성공했다지만 최근 총장 선출 과정에서 불거진 요란한 잡음이 ‘서남표식 리더십’에 대해 기대보단 우려를 품게 하는 게 사실이다. 그 우려를 잠재우고 KAIST 운영을 정상화하려면 서 총장이 그간 제기된 비판의 목소리에도 겸허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 총장에 대한 비판은 소통 없이 독불장군 식으로 밀어붙인 개혁 방식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룬다. 100% 영어 강의 시행, 교수들의 테뉴어(정년보장) 심사 강화 등 그의 대표적 개혁 조치들을 놓고 외부에선 박수를 보냈지만 내부적으론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수업시간에 질문이 없어지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지적이었다. 모든 개혁엔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학생·교수들을 끌어안고 함께 가려는 노력 없이 혼자만 앞서 나가다 보니 학내에 커다란 내분을 자초하고 말았다.

그 같은 내분이 이번 총장 선출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서 총장은 물론 KAIST까지 대외적으로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게 됐다. 직선제로 총장을 뽑는 국립대와 달리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KAIST는 독특한 선출 방식을 갖고 있다. 교수 등으로 구성된 총장 후보 선임위에서 후보를 압축한 뒤 이사회에 올려 투표를 실시한다. 그런데 이번엔 선임위 단계부터 친(親)서남표파와 반(反)서남표파로 편을 갈라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 사달이 난 것이다. 이사 교체와 정관 개정을 둘러싸고 이사회와 교육과학기술부가 맞서 관치 논란까지 더해지며 혼탁이 극에 달했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을 선도해가야 할 KAIST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추태가 벌어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평생 모은 재산을 KAIST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희사한 수많은 기부자들에게도 큰 실망을 안겼다. 서 총장이 소통의 리더십으로 거듭나 조속히 내분을 봉합하고 KAIST 개혁을 잘 마무리 지어 국민들 기대에 부응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