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길교수 죽음 부른 '유럽 간첩단'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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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의문사한 서울대 최종길 교수가 연루된 것으로 1973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유럽 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은 당시 중정이 조작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의문사진상규명위가 29일 밝혔다. 위원회는 "사건을 재조사한 결과 단 한명의 간첩도 없는 조작극임이 드러났다"며 "당시 조직 총책으로 지목됐던 네덜란드 유학생 李모씨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가 없어 유럽 거점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당시 중정은 유럽에 체류 중이던 학자·공무원 등 54명이 현지에서 북한 공작원과 연계해 간첩 활동을 벌였다고 밝히고, 3명을 구속(이중 崔교수는 사망)하고 17명을 불구속 입건했으며 31명을 경고 조치했었다.

위원회는 "당시 사건 연루 인사 대부분이 67년 '동백림 간첩단 사건'의 미체포자인 李씨와 관련된 사람들로 중정은 당시 반(反)유신 분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사건을 조작했으며 崔교수도 李씨와 중·고교 동창이라는 이유로 연루시켰다"고 덧붙였다.

한편 崔교수의 아들 광준(38)씨 등 유족들은 국가와 당시 중정부장 이후락씨 등을 상대로 이날 10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유족들은 "사인이 정보부의 고문이었음이 규명된 만큼 민사상 배상책임 소멸 시효(5년)는 지났지만 국가기관이 배상 책임을 회피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이날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기관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를 배제하는 특례법의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장정훈·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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