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봄 에베레스트… 최다·최고령 새 역사 썼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1면

유명 산악인이 자신의 체험을 담아 말한 산악 명언은 수없이 많다. 그중 '거기에 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라는 명언은 산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회자되는 이야기다.

신비에 싸여있던 제3의 극지 에베레스트(8천8백50m) 정상에 인간이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53년의 일이다. 내년으로 등정 반세기를 맞는다.

한때 영국·스위스·미국 등은 에베레스트 초등의 영광을 얻기 위해 치열한 레이스를 펼쳤다. 그 영광은 32년간 9차례나 도전한 영국에 돌아갔다.

93년 봄에는 6주 동안 3명의 여성 등 한국 산악인 7명을 포함한 전세계 90명의 클라이머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특히 5월 10일에는 19세의 인도 소녀가 정상을 밟아 최연소 등정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96년에는 미화 6만5천달러만 내면 정상까지 오르게 해주는 상업 등반대가 출현했으며 99년에는 최단 시간(16시간30분) 등정기록과 함께 셰르파가 정상에서 무산소로 21시간여 동안 머물렀던 기록도 만들어졌다.

올해 봄에는 개인 최다 등정기록(12회)이 나왔다. 또 5월 16일엔 8개팀 54명의 산악인이 정상을 밟아 1일 최다 인원 등정기록을 남겼으며 63세의 일본 여성 산악인이 최고령 등정기록을 경신했다.

1852년 처음 발견된 에베레스트는 20세기 들어와 첫 원정대가 발을 들여놓았다. 산악인들의 영원한 샹그리라인 에베레스트는 초등이 이뤄질 때까지 30여년의 기간이야말로 진정한 알피니즘이 꽃피웠던 시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에베레스트 초등 이후 정상을 밟은 산악인은 1천1백14명에 이르고 1백80여명이 여기서 목숨을 잃었으며 수많은 진기록을 쏟아냈다.'거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남긴 조지 라이 말로리(영국)도 목숨을 잃은 산악인 중의 하나다.

99년 에베레스트 8천2백m 지점에서 발견된 말로리의 시신은 전세계 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1~3차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참가했으며 3차원정 때(1924년) 6캠프를 출발했다가 정상 부근에서 실종됐다. 그리고 75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말로리가 말한 '거기에'란 에베레스트를 뜻한다.3차원정을 앞둔 말로리가 미국 순회강연 중 필라델피아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의 강연이 끝나자 어떤 부인이 엉뚱하게 "당신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말로리는 짜증스런 말투로 "그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이다.

말로리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간에 아직까지도 산에 가는 이유를 한마디로 함축한 표현이라는 점에서 산악인에게는 불후의 명언으로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는 것이다.

<코오롱등산학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