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원은 자선 아니라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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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메세나(Mecenat)'란 말에 익숙하지 않은 기업인이 아직 많다. 원래 메세나는 예술을 사랑해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던 고대 로마 귀족의 이름인데, 이제는 '기업이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활동'을 통칭하는 말이 됐다. 메세나는 영리활동과 관련된 특별한 조건을 달지 않는 순수한 예술애호로 높이 평가된다. 이같은 메세나의 취지를 널리 알리기 위한 심포지엄이 지난 24일 삼성화재빌딩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문화와 기업'이란 주제로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회장 손길승 SK회장)와 한국문화경제학회(회장 곽수일)가 공동 주최했다.

편집자

갤러리 '쌈지스페이스'의 예를 들자 메세나의 개념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쌈지는 '아트 마케팅(Art Marketing)'이라는 메세나의 한 방식으로 꽤 알려진 기업이며, 그곳에서 운영하는 갤러리가 쌈지스페이스. ㈜쌈지 천호균 대표는 '쌈지 아트 마케팅과 아트 프로젝트'라는 글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메세나의 개념,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메세나의 구체적인 방식을 설명했다.

㈜쌈지의 메세나의 예는 '쌈지스페이스'라는 갤러리의 일부를 젊은 예술가(주로 화가)들의 작업실로 내주는 것. 매년 10명의 작가에게 방을 하나씩 주고 작업을 하도록 한다. 서로 모여 공동의 관심사를 논의하고 이를 창작에 반영하면서 시너지효과를 얻는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작가들의 작업을 후원하고 논의에 동참하면서 쌈지는 나름의 실험성과 창의성에 맞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1년이 지나면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성과를 전시회를 통해 보여준 다음 갤러리측에 그림을 한점 기증하고 떠난다. 그들의 후배가 작업실을 이어받게 된다.

천대표는 이같은 방식에 대해 "예술을 사랑하기에 후원한다. 그러나 예술가들 역시 자신들을 후원해주는 기업을 이해하고 당당하게 작품을 기증할 줄 아는 여유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같은 상호 이해와 협력만이 진정한 메세나의 성공을 담보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지명관(한림대)교수는 '메세나의 현대적 의미'라는 기조 강연에서 "미래는 기업과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사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생산을 위해 불가피하게 경쟁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보다 인간적인 삶을 위해 서로 도우며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전자가 기업과 노동이라면, 후자는 여유와 예술이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뤄야 개인이나 사회가 모두 지탱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양현미 연구원은 '기업의 문화예술지원 패러다임 전환'이란 발제에서 "기업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과거의 자선 개념에서 문화투자라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메세나 활동은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해주는 간접적인 효과만 아니라, 이에 따른 매출증대와 기업 내 조직문화의 선진화를 이루는 직접적인 성과를 가져온다"며 "메세나는 21세기 기업경영에 반드시 수반되어야할 '문화자본(Cultural Capital)'이라는 인식이 빨리 확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소영 연구원은 "많은 국내기업의 경우 오너의 개인적 인연이나 취향에 따라 후원대상 장르나 예술가를 결정하는데, 이같은 경우 메세나의 참된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보다 효과적인 메세나를 위해서는 기업의 이미지에 맞는 장르와 예술가를 골라 장기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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