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MF에 순응한 것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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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산업이 발달한 한국은 수출로 빚을 갚으면 됩니다.그러나 그럴 역량이 없는 말레이시아로선 환율고정·외자통제 등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해야 했습니다. 안그랬으면 외환 투기꾼들에게 달러가 넘어가 환율이 뛰고, 주가가 폭락하고,대규모 실업이 발생했을 겁니다."

1998년 위환위기가 터졌을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을 거부하고 독자노선을 걸어 위기 극복에 성공한 마하티르 모하마드(77) 말레이시아 총리가 23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하티르식 위기 해법'을 소개했다.

"당시 외국자본 유출을 1년간 금지하고 고정환율제와 저금리로 경기를 부양했습니다. 풍부한 자원과 활성화된 외국인 직접투자를 이용해 버틴 거죠. 매일 경제전문가 10명과 함께 모든 경제지표를 검토, 대책을 지시했습니다. 그 결과 1년 만에 경제성장률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5.4%)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마하티르 총리는 "최근엔 환율·외자통제가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변한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이미 3년 전에 외자통제를 철폐해 말레이시아의 자본 유출입은 완벽히 자유로운 상태다. 다만 고정환율제는 안정적인 경제 예측에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계속 시행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말레이시아와는 정반대로 IMF 처방을 전면 수용해 위기를 극복한 한국에 대해 지나치게 '순응적'이었다는 비판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한국이 무턱대고 IMF에 순응한 것이 아니라 경쟁력있는 수출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IMF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라고 능숙하게 피해갔다.

자신이 98년 외환위기 당시 "조지 소로스 등 유대인을 주축으로 한 투기자본의 음모"라고 주장한 데 대해 마하티르 총리는 "소로스 같은 투기꾼이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고,지금도 그 믿음은 변함없다. 그러나 유대인 전체가 투기꾼인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아시아에 사사건건 간섭한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과 관계가 걸끄러운 편이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는 정상회담(지난 13일)까지 하는 등 우호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마하티르 정부는 전복돼야 한다'고 공언한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부시 대통령은 우리의 문제해결 방법을 수용했고 우리도 그의 반테러 전쟁을 인정했기 때문에 사이가 회복된 것이죠"라고 그는 설명했다. "알 카에다 용의자 60여명을 체포하는 등 미국의 반테러 전쟁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칠순 나이로 보기 어려울 만큼 꼿꼿하고 활력이 넘쳐 보이는 그는 "다음 총선에 또 출마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장기집권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지금 뭐라 언급할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99년 11월 총선에서 다섯번째 연임 기록을 세운 그의 임기는 2004년 말까지다.

강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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