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매매 유럽이 주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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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계 자금이 미국계 자금을 제치고 한국 증시의 주도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계 자금은 중장기 투자 성향의 미국 자금과 달리 공격적이고 투기적인 경향이 두드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유럽계 외국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국내 증시의 변동성도 높아질 공산이 크다. 증권가에서는 조세회피지역이 많은 아시아 지역 펀드가 가장 빈번히 주식을 사고팔며, 그 다음이 유럽계 자금이라고 진단한다. 미국 자금은 뮤추얼펀드와 연기금이 많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 흐름을 보인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1월 거래소의 외국인 거래금액 가운데 영국.룩셈부르크.네덜란드.아일랜드 등 유럽 4개국 투자자들이 차지한 비중은 모두 36.8%에 달했다. 여기에 영국령 조세회피처인 케이만아일랜드(7.2%)를 합치면 범유럽계 자금이 44%에 달한다. 이는 미국(25.7%)이나 싱가포르(4.2%) 자금의 매매비중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특히 영국 자금은 지난 4월 20.6%에서 11월에는 25%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 자금은 지난 7월 32.7%에 달했던 것이 현재 25%선으로 뚝 떨어졌다.

11월 말 현재 금감원에 등록한 외국인 투자가(개인+기관) 1만6780명 중 미국이 37.9%인 6353명인 반면, 영국은 8.5%인 1422명에 불과하다. 등록된 투자자수가 적은 영국계가 매매 비중에서는 미국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영국 등 유럽계 자금이 빈번하게 매매한다는 얘기다.

유럽계 자금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의 매매패턴에 증시가 휘둘리는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5월 유럽계 투자자들이 거래소에서 무려 1조3678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외국인 매도세를 주도하는 바람에 870선이던 종합주가지수가 한때 717까지 떨어졌다. 당시 미국계 투자자들은 1조4712억원어치를 순매수했지만 영향력에서 영국계에 밀렸다.

유럽계 자금은 지난 10월 이후 한국 주식을 팔아치우며 차익 실현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달엔 외국인 전체 순매도액(2729억원)을 웃도는 3388억원을 유럽 4개국 투자자들이 순매도했다. 최근 삼성물산에 대해 적대적 인수합병(M&A)설을 흘리다 이 회사 주식을 대량매도한 헤르메스도 영국계 펀드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럽계 자금은 환율에 따라 움직이는 성향이 강하다"며 "환율을 중시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단기적인 시장흐름(모멘텀)에 좌우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계 자금의 영향력이 강해지며 주가의 진폭이 커지는 것에 유의해야 하지만, 이들에 의해 장세의 방향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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